지역 행정사무소에서 복지관련 봉사를 하고 있는 지인(知人)이 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자주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거나, 무료 도시락 배달, 그 외 노인들에게 나라에서 부여하는 혜택을 챙기고 그것을 수급하는 데 필요한 사항들을 작성하는 데 도우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가 그 일을 시작하고 처음 맞닥뜨린 사건은 자신도 역시 노년층인지라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대화 상대를 절실히 필요하기에 그는 자기가 맡은 노인들에게 자주 안부 전화를 하며 그때그때의 상황도 파악하곤 하였다. 어느 날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수급자 노인이 있어서 행여 하는 마음에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고독사한 현장을 마주하고 말았다고 한다. `젊을 때 애써 가족을 지키려고 일하고 자식 교육을 시켰지만 지금 곁을 지키는 이 아무도 없이 휑한 빈손만 남은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한 말이다.   언젠가 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유아들 그림책의 대부분이 엄마, 아빠, 거기에 아이 하나 아니면 둘로 이루어진 가족의 모습이 정형화(定形化)되어 있음을 문득 발견했다. 핵가족이 당연한 가족의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세 살밖에 안 된 손녀는 가족을 셀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제외하고 손가락을 꼽는다.   한 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만나서 같이 놀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도 가족은 아니라고 그림책을 가리킨다. 그럼 가족은 누구지 하고 물으니 망설임 없이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자기라고 대답한다. 웃고 넘어갈 철없는 아이의 대답이긴 해도 약간의 서운한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기들의 그림책만이 아니다.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도 예전에는 일상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족 드라마(거기에는 조부모도 당연히 포함된)가 있어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족 드라마를 방영하는 곳이 아주 드물다. 대신에 얽히고 설킨 애정 관계와 비현실적으로 일그러진 가정을 소재로 한, 소위 막장드라마가 대세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 노출된 어린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층 중에서 홀로 사는 노인의 160만을 넘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형제자매가 셋 이상은 되는 가족으로 때로는 다섯, 여섯이나 되는 형제자매들과 한 집에서 부대끼며 자라던 세대이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에 익숙하지 않다. 노인의 고독은 도시보다 농촌이 더욱 심각하다. 도시에서는 비교적 의료나 노인을 위한 오락 프로그램 등 문화적 환경 조건이 농촌보다는 양호하다.   산업사회에서 도시로 취업해 간 자녀들은 거기서 핵가족을 이루고 차츰 노부모와는 단절된 생활을 한다. 그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조부모는 가족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노인 문제는 가족 내 문제로 대개 집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구문화의 유입과 핵가족화 등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노인 문제는 이제 가족 밖의 사회적 문제와 책임이 되고 있다. 나이든 사람도, 특히 독거노인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의 고독사는 가장 기본적인 보살핌으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당연히 행복이라는 권리로부터도 소외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갖가지 이름을 붙인 날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오월에 환한 행복을 맘껏 누리는 날이 되겠지만,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오월의 환한 햇살이 만드는 그늘은 고독이라는 옷을 한 겹 더 겹쳐 입는 날이다.   시간은 공평하므로 누구에게나 노년은 어김없이 찾아 올 미래이다. 오월의 그늘에 방치된 미래의 자신들에게 일별(一瞥)하는 정도의 관심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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