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립미술관의 설립이 가시화되는 듯하다. 설립 장소로 황성공원의 빈터를 잡았다고 하니 이제 한 발짝씩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경주시가 국제적인 관광도시임을 부정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 콘텐츠가 뒷받침 돼야 한다. 그러기에 단순하게 `관광도시`라고 칭하지 않고 `문화관광도시`라고 하지 않는가. 문화가 빠진 관광은 그야말로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경주의 시립미술관 설립은 시급한 현안이었던 것이다.  미술관이 그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대표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미술관이 전시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현대의 미술관은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한다. 미술품을 전시하고 관람하던 과거 미술관의 기능에서 벗어나 이제 그곳에서 전시는 물론이고 문화교육, 체험, 콘서트, 컨프런스, 심지어 웨딩까지 이뤄진다. 레스토랑도 있고 기프트숍도 들어선다. 학생들은 미술관에 현장체험학습도 하고 가족 단위로 주말을 그 공간에서 즐길 수도 있다.  경주 시립미술관이 황성공원에 들어서는 것에 대해 완전한 만족을 할 수는 없다. 앞으로 미술관으로 접근하기 위해 어떤 교통환경을 조성할지 모르지만 접근성이 완벽하게 좋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외곽에 들어서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시민들에게는 황성공원이라는 입지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지인이 경주를 관광하러 왔다가 미술관을 둘러보기에는 그리 적절하지는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어떤 콘셉트로 경주 시립미술관을 만들 것이냐는 점이다. 선행 자치단체 미술관의 관행을 따라했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아직 선진국의 미술관이 지향하는 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주 시립미술관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경주시의 예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품을 수장고에 넣을 여력이 없다. 따라서 다른 미술관이 가진 프로그램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 개성 있는 미술관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복합문화공간의 특성을 확실하게 살린 파리의 퐁피두센터를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또 미술관 건물 자체를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지어야 한다. 부지로 선정된 황성공원의 주변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물을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의뢰해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해야 한다. 국제공모를 거쳐서 다른 지자체나 해외 여러 도시들의 미술관과 비교해도 확실하게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도록 지어야 한다. 미술관 건물을 보러 관광객이 몰려오도록 하는 것은 경주가 지향하는 `문화관광도시`의 비전과도 부합한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이나 싱가포르의 에스플라네이드가 건축물만으로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았는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번 지어놓으면 다시 고치기 힘든 것이 미술관이다. 경주시립미술관은 무수하게 많은 도시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늦어진 일이니 차분하고 꼼꼼하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고 국제적인 안목으로 충분한 예산을 만들어 건립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떤 미술관이 들어서냐에 따라 경주시의 품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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