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복지를 위한 국가의 배려로 `예술 활동 증명 확인서` 라는 게 있다.  이 예술인 활동 증명 확인서 하단엔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데 공헌 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창작, 실연, 기술 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예술인 복지 법 제2조)` 라고 명시돼 있다.  예술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문구이자 또한 대의명분도 적시 된 듯하여 매우 인상 깊다. 특히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데 공헌 하는 사람으로서` 라는 내용에선 절로 가슴이 벅찼다.  사실 문인은 누구인가. 자신의 펜 끝으로 시대적 탁류를 정화하고 독자들이 한편의 글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가슴에 부딪치는 주옥같은 글을 창작하는 사람이 문인 아닌가.  특히 남다른 개성과 관점으로 철학과 사유를 통하여 인생과 사물의 진리 추구에 진통하고 고뇌하며 꾸린 게 수필 문학이다.  수필가로서 평론가로서 지난 30여 년 가까이 글을 써왔다.  그야말로 생산성 없는 문학 창작에 수많은 시간을 불면과 싸워야 했고, 글쓰기에 미쳐 숟가락만 놓으면 컴퓨터 앞으로 직행 하느라 운동과도 담을 쌓았다.  글을 창작하는 그 순간은 참으로 고독했고 한편 가슴 저리도록 외로웠다. 흡사 문학이라는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래 피를 말리는 창작의 시간은 극한에 가까운 자신과 싸움이기도 했다. 어찌보면 찬란한 슬픔이랄까.  그럼에도 눈만 뜨면 머릿속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늘 가득 차올랐다.  이렇듯 글쓰기에 몰입된 필자를 주위 사람들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돈벌이도 안되는 것은 물론, 머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글쓰기에 무엇 하러 그토록 죽자 사자 매달리느냐고 물어온다.  그 시간에 백화점 순례나 하란다. 그곳에서 신상품이나 아님 명품 구매나 해보란다. 아님 피부과에 가서 피부 관리나 받을 일이지 그런 일엔 가치를 안두는 필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무엇보다 부를 쌓는 일도 아닌데 별다른 소득도 없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필자가 시대에 뒤떨어진 삶을 사는 듯 하단다.  하지만 물질이란 언젠가는 낡고 싫증나면 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피부과에 가서 온갖 방법으로 노화된 피부를 재생 시키려고 애써도 부질없는 일이잖은가.  떠나가는 청춘을 어찌 인위적으로 잡을 수 있으랴.  그렇다면 과연 어느 쪽이 가치 있는 일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있다.  평론가이자 수필가인 이유식 전 배화여대 교수는 그의 에세이 집 `내가 찾은 행복의 현주소`에 수록된 `문인들이여, 자긍심을 찾아보자`가 그것이다.  "우리는 살아있으나 죽으나 시인이요, 수필가요, 소설가며 평론가이다. 아무리 높은 지위나 직위에 있다할지라도 물러나면 `전(前)`이다. 부나 직위, 권세란 당대의 일시적 사유 재산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반짝 출세`요. `반짝 광영`이다. 모두 문자 그대로 화무십일홍이다. 그러나 예술이나 기타 정신문화는 공유 재산이요. 공유 유산이 되기 때문에 영구성이 있는 만큼 보다 좋은 작품을 써보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리라 본다" 라며 문인의 위상을 한껏 높이는 언술을 표명했다.  이유식 작가의 언술에 공감이 깊다. 이게 아니어도 예술 활동 증명서 확인서에 명기된 내용처럼 문인의 글 한편이 국가를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했기에 더욱 이유식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년 전 어느 신문에 필자가 쓴 칼럼 한편이 국민의 삶에 적으나마 도움을 준 듯하다면 지나칠까.  `앉아 있는 여인`이란 칼럼 내용엔 등산을 다녀오는 길 시내버스 안에서 겪은 일이 진솔하게 토로돼 있다.  시내버스 안에서 젊은 여성이 헛구역질을 하자 어느 노인이 좌석을 양보하는 내용이 나온다. 앉아서도 자꾸 헛구역질 하는 여인에게 필자가 등산 가방에서 비닐 봉투를 꺼내 건네자 여인은 참지 못하고 끝내 토하고 말았다.  그런 여인에게 곁의 할머니가 "혹시 임신 아니냐?" 묻자 임신 3개월째란다. 그녀는 첫 아이도 초기에 유산한 경험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인은 몸매가 날씬하여 임신 사실을 눈치 챌 수 없었다.  당시 약 100,000 만 명의 태아가 자연 유산 됐다는 어느 통계를 떠올리며 배가 안 부른 초기 임산부에게도 좌석을 양보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필자의 이 글이 신문 지상에 나간 후 불과 얼마 후 서울 전철이나 우리 고장 시내버스 안에도 경로석 외에 초기 임산부 좌석이 배치됐다.  우연치고는 필자의 글과 너무나 일치한 발 빠른 국가의 정책이었다. 혹시 필자의 글이 영향을 끼쳤나 싶어 문인으로서 어깨가 으쓱했다.  이렇듯 문인의 펜 끝은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등불이며 때론 칼보다 강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