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고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932번이나 외세(외국의 세력)의 침략을 겪은 나라라 한다. 왜란으로부터 한국 동란까지 숱한 고초를 당한 국가이다.  거기에 국란의 결과로 어딜가나 따라다니던 가난에 우리 국민은 숱한 전란과 빈국으로 외국의 도움을 숱하게 받아왔던 백성들이다. 또한 덧붙여 `동방예의지국`이란 전통 아래 백성들은 예의만 존중하고, 천하고, 어려운 일들은 멀리했던 것이 가난의 시작이었다.  가난의 슬픔 속에 견디어 온 습성이 국민의 성향이 기쁨(희극)보다는 슬픔(비극)에 잔존해 왔다. 희극은 순간적으로 마음껏 웃으면서도 싱겁다고 하고, 비극은 함께 동정을 나누고, 실컷 우는 맛에 많은 동감을 느낀다. 성서 `전도서`에, 웃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좋다. 얼굴에 시름이 서리겠지만 마음은 바로잡힌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인간에게 있어 공통되는 온갖 많은 화 중에 가장 큰 것은 슬픔인 것이다. 슬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는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덜 수 없는 슬픔이다. 슬픔은 남에게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완전히 가시지는 않을망정 누그러질 수는 있다.  파스칼의 `팡세`에 "슬픔은 지식이다. 많이 아는 자는 무서운 진실을 깊이 한탄하지 않는다. 지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므로" 때로는 슬픔이 오해된 즐거움인지도 모른다.  만나고, 알게되고, 사랑하고 그리고 헤어져 버리는 것이, 하고 많은 인간의 슬픈 사연이다. 슬픔의 유일한 치료법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몰두하는 것이다. 환락과 웃음의 그늘에는 거칠고 단단하고 냉혹한 기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 뒤에는 언제나 슬픔만 있을 뿐이다. 고통은 쾌락과는 달라서 가면을 쓰지 않는 점이다. 슬픔은 기쁨과 달라 감정의 발로에 억제시키기 어려운 느낌의 한 표출이다.  한 심리학자의 말씀에, 슬플 때 또한 너희 가슴을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너희는 너희에게 즐거움이 되었던 그것을 위해 울고 있음을. 그러나 슬픔은 버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그것은 빛나는 기쁨과 같을 정도로 강력한 생활의 일부이다. 그것이 없으면 감정 조율에 더 삭막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슬프다는 것이 자랑은 못되지만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에게만 귀중한 감정이다. 슬픔과 상반되는 기쁨의 요소는 어떠한가. 기쁨은 마음이 즐거운 것이다. 기쁨의 눈물이라 해서 반가움의 한 대열에 속하는 경우도 있다. 웃음은 기쁨이고, 눈물은 슬픔이다.  때로 이것이 교차되고 혼합되어 감정의 표찰이 양면을 갖게 한다. 마음의 기쁨은 사람에게 생기와 희망을 주고 쾌활은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보약에 속한다.  한 시인이 이런 감정의 일기를 담은 글이 있었다. 기쁨은 인생의 요소이며, 인생의 욕구이며, 인생의 힘이며, 인생의 가치라 했다.  인간은 누구나 기쁨에 대한 욕구를 갖고, 기쁨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자백했다. 인생의 최상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데 쾌감을 느끼고, 기쁨으로 하늘의 속삭임의 고동을 듣는 사람은 행복하다.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는 기쁨에는 괴로움이, 괴로움에는 기쁨이 없으면 안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기쁨을 잃은 인생은 기름이 없는 등불이다. 그렇다고 기쁨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생활만 바르고 옳으면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경비가 들지 않는, 필요에 의해서 얻어지는 기쁨이 가장 좋은 기쁨이다. 슬픔은 저절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그 기쁨의 진가를 찾으려면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한다. 기쁨이란 얻었을 때의 감정이요, 슬픔이란 잃었을 때 감정이다. 속담과 격언에, 한국-쌍가마 속에도 설움은 있다.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을 기쁠 때마다 돋는다-기쁨 보다 슬픔이 더 많다는 뜻. 기쁜 일이 생기면 굶어도 배부르다. 영국-위험 없이는 기쁨이 없다. 기쁨과 슬픔이 인간을 선인(善人)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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