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어느 프로그램이 인상 깊다. 이 방송을 시청할 때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뇌리를 스쳐서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면 그 여자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주지만 단 한 가지 해주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영원토록 그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일이다” 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이 언술이 맞는 성 싶다. 지난날 열렬히 사랑했던 지인 부부다. 그러나 현재 이들의 결혼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걸핏하면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곤 한다. 오늘날 이런 지인의 부부관계를 비쳐볼 때 사랑의 유효 기간이 참치 통조림 유통 기한보다 더 짧음을 새삼 느낀다. 이로보아 아무리 뜨겁던 남녀의 사랑도 불변은 없다. 또한 완벽하게 서로에게 만족하는 부부 역시 없는 듯하다. 오죽하면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애증, 그리고 불화에 따른 고민 등의 실제 사례를 TV 프로그램에서까지 다룰까. 이 방송은 요즘도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전부다. 이것만 미뤄 봐도 더 이상 가정은 인내의 장소가 아닌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 방송을 시청하노라면 남녀 사랑이 인생사 희, 비극의 시원始原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가정이 화목해야 행복하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가정불화로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럼에도 어느 가정이든 소소한 부부간의 불만과 갈등은 배제할 수 없다.   결혼은 사랑의 결정체 아닌가. 사랑은 참으로 달콤하다. 이것이 가슴에 싹트는 순간 그 격렬한 감정 앞엔 아무리 지식이 높고 지혜로운 사람도 눈이 멀기 마련이다. 특히 첫사랑은 그 힘이 매우 강렬하여 한 인간을 평생 지배하기도 한다. 일예로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Dante-Alighieri:1265-1321) 경우 기독교 문학 최고 백미이자 불후의 걸작인 `신곡`을 남겼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영원히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첫사랑인 베아트리체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 때문이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겨우 9세였다. 그리고 18세에 공식 석상에서 만난 게 두 번째 만남의 전부였다. 단테가 먼발치서 바라본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천상 선녀 그대로였다. 훗날 그녀는 단테에게 우주 같은 경이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단테로 하여금 `신곡`, `신생`의 작품을 탄생케 한 최고의 뮤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일회성 사랑이 난무하는 세태 아닌가. 단테 같은 남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인공이 아닐까. 플라토닉 러브 따윈 구시대의 산물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 없이도 오로지 쾌락 추구를 위한 본능에 자신의 심신을 맡기기도 한다. 몸 간수가 참으로 소홀해졌다고나 할까. 남녀가 서로 뜻만 통하면 만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 예사다. 이런 젊은이들의 성 개방 풍조 탓인지 미혼모가 늘고 있다. 미혼모들의 연령층도 낮아지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여고생이 아기를 몰래 낳아 변기에 버린 경우도 있잖은가. 미혼모 대부분이 아직 학문을 탐구할 20대 초반의 연령이어서 임신을 하여도 아기를 키울 능력이 없다. 개중에는 나이 어린 학생도 있잖은가. 아이를 키울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한 여성의 인생 절반이 실패하는 암시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까지 가세해 그들이 설 자리가 없다. 아이를 당장 낳아도 머물 집도 없고 경제적 능력도 없다. 이러한 악조건이 그들을 점점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더불어 사는 밝은 사회 구현은 삶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이들 아픔을 어루만지고 생채기 환부를 제대로 싸매줄 때 실현 가능하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이즈막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형국에 경위야 어찌됐든 미혼모들은 새 생명을 이 땅에 탄생 하게 한 어머니다. 아기들 역시 훗날 우리 사회에 일원이 될 귀한 몸이다. 태어난 배경이야 어떻든 엄연히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 아이들이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잘 자라도록 사회적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다. 아직 미혼모는 다수가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지니고 아기를 마음 놓고 양육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참에 젊은 청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사랑에도 책임이 뒤따른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 할 마음이 아니라면 자신의 행동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을 스스로 거두지 못할 바에는 함부로 쾌락의 선을 넘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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