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로 벽을 뚫는 소리나 다름없다. 사실 굴착기로 벽을 뚫는 소음을 재보면 70-90 데시벨이다. 이것과 견줄만큼 고통스럽다면 지나칠까. 남편과 각방도 써 보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밤의 적막을 깨고 이 소리만 유독 크게 들린다. 새벽 단잠을 깨우기도 한다. 이때마다 애써 귀를 막곤 한다. 처음엔 `드르렁 드르렁` 하다가 나중엔 `칵칵 카악 카악` 하는 코골이 소리다. 어느 날 밤은 핸드폰 불빛으로 잠든 남편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코를 심히 골다가 금세 숨이라도 넘어갈 듯 몇 초간 무호흡증을 보여서다. `저러다가 숨이라도 멎음 어쩌나?` 라는 염려에 덜컥 겁이 났다.  무더운 여름철, 이 소리에 시달릴 땐 몹시 짜증이 난다. 평소 협소한 공간을 싫어하는 남편은 혼자서 집안 너른 거실을 점령한지 꽤 오래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남편 코고는 소리는 요란하여 방안 곳곳을 넘나들곤 한다.  젊었을 때는 아이 키우랴, 살림 하랴, 고단한 시기여서인가. 남편과 한 방을 써도 그다지 코골이를 의식하지 못했다. 솔직히 당시엔 남편의 심한 코골이가 별반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마치 자장가처럼 달콤하였다. 최면제(催眠劑) 역할까지 해주었다고나 할까. 심지어는 사랑의 함성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코고는 소리가 수면을 방해할 만큼 최악의 소음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를 되짚어보니 갱년기 때부터이다.  이런 남편의 코고는 소리는 중국 청나라 때 학자인 이동(李棟)을 능가한다면 다소 과장된 말이려나. 이동은 길을 걸으면서도 코를 골은 사람으로 유명하다고 이규태는 그의 글 `코고는 예술`에서 밝혔잖은가. 그의 코골이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10 리 밖에서도 그의 접근을 인지할 정도란다.    이 코골이는 단순히 소음으로만 작용한 게 아니었다. 적(敵)을 물리치는 무기로도 둔갑 했단다. 이규태의 이 글에 의하면 세조 때의 일이다. 당시 무신 홍윤성은 막중(幕中)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마치 청천벽력 같았단다. 이 소리를 들은 적(敵)이 매우 놀라 모조리 도망갔다는 내용에선 홍윤성의 코골이 위력(?)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규태는 자신의 윗글에서 코는 여자보다 주로 남자가 곤다고 했다. 이는 태고 적에 아내를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코를 골았다는 가설도 제시 하였다.  이로보아 태초부터 남자는 숙명적으로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 온 셈이다. 일상에서 가장 편히 쉬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 아닌가. 잠을 자면서도 남자는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긴장을 늦추지 못한 듯하다. 코골이 소리로나마 위험 상황으로부터 아내와 가족을 지켜야 했으니 얼마나 고달픈 삶인가.  혹시 남편도 밤마다 코골이로 필자의 안위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닌지…. 상상과 착각만큼 일정 금액이 필요치 않은 무상의 일은 없다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야속한 남편 코골이를 이규태의 언술로나마 벌충해 보는 일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현대 남자들의 삶은 예전 같지가 않다. 어린 시절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월급날이 문득 떠오른다. 이 날 아버지는 누런색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어머니께 건네곤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가 월급봉투를 어머니께 건넬 때마다,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며 순간 어깨를 쫙 펴는 모습을 종종 목격 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이 때 어머니 앞에서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은 어떤가. 월급도 아내 통장으로 전부 입금 되잖은가. 집안에서 아버지는 단순히 돈 버는 기계에 불과 한 듯하다. 어쩌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도 자녀들에게 할양이면 아버지 말을 한낱 잔소리로 치부하기 일쑤다.  어디 이뿐인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늘 가슴을 짓누르잖는가. 또한 상사 눈치 보랴.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랴. 물먹은 솜을 짊어진 듯 마냥 양 어깨가 심히 무거운 남자들이다. 낮엔 직장 일에 시달린 심신을 밤에 잠을 통해서나마 재충전해야 할진대, 심한 코골이가 남성들을 밤새 괴롭혀서 제대로 잠조차 이루기도 힘들다.  밖에서 가슴 답답한 일들이 많았나보다. 심한 코골이도 모자라 `바득바득` 이 까지 간다. 심한 코골이와 이 까지 번갈아 갈며 잠을 자는 남편 모습이 마냥 측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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