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일에만 깊이 빠져들어 명품을 만들어내는 정신이 `장인(匠人) 정신`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장인 정신으로 일하는 전문가들을 각별히 대우한다. 프랑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장인이 되면 박사학위를 갖지 않아도 최상의 사회적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가족 전통 의식이 장인 정신의 뿌리다. 국수 가게를 꾸려나가더라도 자긍심을 가지고 오랜 세월 대를 잇는 집들이 많다고 한다. 장인은 평생 고용된 직업이라고 여기고 어떤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목숨까지 바치기도 한다.  독일인들은 가치관이 이들 나라들과는 다소 다르다. 종교윤리와 연계한 `천직`에 무게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천직은 하느님이 내려준 신성한 것이므로 물건을 잘 만들어야만 하느님께 바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전통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창조와 혁신을 높이 받든다. 미국의 장인들은 도덕과 윤리가 오히려 속박이 도게 마련이므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창업가 문화를 받드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장인들은 전통을 중시한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추구하는데 무게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이 같은 장인 정신과 이를 받드는 사회 풍토가 이들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국의 장인 정신을 `주마간산`격으로 짚어봤지만, 우리의 경우 자신이 갈고 닦은 전문 분야에서 프로 근성을 가지고 인생을 거는 장인 정신이 이어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열심히 일해서 살 만하면 그보다 남에게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하려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경우도 적잖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글쎄, 재촉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수필가 윤오영의 작품 `방망이 깎던 노인` 중의 한 대목이다. 방망이를 만드는 노인이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수필은 그 노인의 여유 있는 자세와 조급하고 이기적인 사람의 행동을 대비해 성실한 삶의 태도를 부각시키면서 사라져 가는 전통에 대한 아쉬움도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이 수필이 느림이 빠름보다 중요한 덕목일 수 있다는 사실도 시사하고 있지만 `급할수록 천천히`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며, 장인 정신과 연계해 `느림의 미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온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도 했다.  디지털 시대로 일컬어지는 지금은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빠름`에도 적절한 `느림`이 요구되며, 그 느림이 또 다른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인 정신은 바로 그 `느림의 미학`에서 제대로 꽃이 피어오르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너무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흐름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천천히 가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가야 한다. 성벽을 쌓을 때 돌을 대충 쌓으면 빨리 완성할 수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 돌 하나라도 틈새 없이 차곡차곡 잘 쌓아야 수천 년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성벽이 된다. 우리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면 날림 공사를 피할 수 없다. 그 피해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시 우리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그 사실을 보아왔다.  길어지고 때로는 짧아지는 시간은 미래로만 향한다. 시간의 화살은 과거로 방향을 틀지 못한다. 그 찰나의 짧은 호흡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셀 수 없을 만큼 긴 우주의 시간 속에 우리는 셀 수 없을 만큼 짧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더 천천히 살아야지 스스로 채찍을 들어 재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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