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을 떠날 때   “해는 지고 저녁별 반짝이는데 날 부르는 맑은 음성 들려 오누나/나 저 바다 건너 머나먼 길 떠날 적에는 세속의 신음소리 없기 바라네./움직여도 잠자는 듯 고요한 바다 소리 거품 일기에는 너무 그득해/끝없는 깊음에서 솟아난 물결 다시금 본향 찾아 돌아갈 적에/멀리서 들려 오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떠나가는 내 배에 닻을 올릴 때 이별의 슬픔일랑 없길 바라네/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갈지니/내님 뵈오리 직접 뵈오리 피안의 그 언덕에 다다랐을 때” 이 시는 김동길 박사님이 번역한 영국의 천재 시인으로 알려진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의 시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평생 조사와 은유를 담은 작품들로 세계인들의 감동과 사랑을 받았다. 나와 김동길 박사님의 만남은 50대 초쯤으로 기억된다. 김 박사님은 이 시의 주제를 “속세를 떠날 때”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평소에 알프레드 테니슨의 이 시를 가장 좋아하시는 듯했다. 몇 차례 함께 외국 여행 중 크루즈 선상에서 강의하실 때나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이동할 때도 마이크를 잡으시면 자주 이 시를 등장시키곤 하셨다.   김 박사님의 기억력은 너무도 특별해서 300수의 시를 외우시는가 하면 특히 서양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면 그분의 지혜로운 안목과 지식은 참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김 박사님과 인연이 된 이후 박사님의 철학 세계와 해박한 지식에 매료되어 나 역시 김 박사님을 닮으려고 무척 애를 썼고, 때로는 그분의 흉내를 가끔 내기도 했다. 그리고 김 박사님을 만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비심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할 때면 항상 당신께서 먼저 돈을 낸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나 강의를 하실 때면 자신이 기독교인이지만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할 때면 당신은 불교의 ‘반야심경’에 대한 이야기로 일관하신다.   그래서 2009년 11월 11일 `불교는 깨달음의 과학`을 편찬할 때 `그를 보면 불교를 느낀다`라는 추천의 글을 써 주시기도 했는데 본문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그가 펴낸 수상집 `불교는 깨달음의 과학`을 읽어보면 불교의 참뜻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가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칸트나 헤겔 같은 논리를 가졌다는 말도 아니지만, 신라의 옛 서울에 터를 잡고 작은 사업을 하나 일으켜 최선을 다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본받으려는 또 하나의 부처가 되고자 하는 그 순수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인간 황경환의 모습이 아름다워 이 글을 쓰는 바이다.” 김동길 박사님의 이러한 과찬에 힘을 입었는지 이 책은 2년 전 미국에서 영문판으로 전자북, 오디오북, 종이책이 발간되어 미국의 유통업체 아마존에서 152개국에 종이책이 유포되는 행운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또 김 박사님은 경주가 낳은 박목월 시인을 특별하게 흠모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초청받은 강단이나 몇 사람이 모여 담소하는 자리에서도 박목월이 시를 쓰고 김성태가 작곡한 ‘이별의 노래’를 자신이 부르기도 하고, 시를 낭송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항상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는 1절을 끝내고 2절 3절을 다 부르실 때도 있고, 또 2절 3절의 후렴구로 이어진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를 낭송하고 끝을 맺는다.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가야하는 피할 수 없는 외길, 한 시대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가신 당대의 선지식 김동길 박사님은 자유 민주주의 파수꾼이었고, 보수진영의 큰 별이셨다. 김동길 박사님 가신 곳 그 세계는 두말할 나위 없는 천국의 세계일 것이다. 라고 나는 확신한다. 94년간의 모든 시름 이제는 다 내려놓으시고,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구절 말미처럼 피안의 그곳에서 편히 지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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