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무려 1,800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공식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바하사 인도네시아)를 사용하며 이를 표기하는 문자로 라틴 문자를 쓰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700 종이 넘는 지방 언어와 그것을 사용하는 소수 부족들로 구성된 국가이니 국가 운영이 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나라의 국민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니 자연히 부족간 갈등도 심하여 국민 통합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말레이계 언어를 표준화한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고, 표기는 라틴 문자로 통일합니다. 그 결과 소멸해가는 부족 언어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찌아찌아 부족(部族)도 그런 수많은 소수 부족들 중 하나입니다.  술라웨시 섬 남쪽 부톤 섬에 약 7만여 명이 살며 고유 언어인 찌아찌아 어를 쓰고 있습니다.  찌아찌아 족은 자기들의 독자적 언어와 라틴 문자의 표기법이 상호적으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 보니 점차 자신들의 언어도 사라져 간 다른 소수 민족어처럼 사라질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그러던 차 2009년, 한국의 민간단체인 `훈민정음학회`가 찌아찌아 어의 표기 문자로 한글 도입을 건의했습니다. 비록 비공식 문자이긴 하여도 찌아찌아 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하여 초등학교 수업에 활용하였고 지금은 인근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산되어 한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예를 들자면 `안녕하세요?`라는 의미의 찌아찌아 어를 문자로는 `마엠 빠에 을렐레`로 표기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한글의 어떤 점이 찌아찌아 부족의 마음을 끌었을까요?  한자(漢字)는 글자 하나가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이고 , 일본의 히라카나나 가타가나는 음절 하나에 글자 하나가 대응하는 음절문자(音節文字)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글은 소리글자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인 음소문자(音素文字)입니다. 음소란 음절을 더 잘게 나눈 소리덩이를 말합니다.  가령 `밥`이라는 글자는 `ㅂ,ㅏ, ㅂ`이라는 세 개의 소리덩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글은 소리 표기의 폭이 매우 넓어서 일정 수의 음소로 어떤 말소리든 글자로 표기할 수 있으니 누구든지 쉽게 배워 쓸 수가 있습니다.  음소 분석은 현대 언어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을 정도로 음소문자는 발전된 언어 분석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음소 문자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말소리의 기본 단위인 음절로 모아쓰도록 한 세종의 음성, 음운론적 지식은 현대 언어학자에 버금갈 수준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국보 제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 즉 한글의 제품 설명서 격으로 한글 창제의 이유와 창제 원리,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자로 정리되어 온 다른 언어들과 달리 문자를 개인(세종대왕)이 창제한 경우는 인류 역사상 드문 일인데 더하여 만든 시기, 만든 목적, 사용 방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례는 한글이 유일하다 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문자를 두고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글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입니다.  한글 창제에 대해 더욱 주목할 사실은 훈민정음 서문에 담긴 세종의 애민사상입니다.  가장 배우기 쉬운 글자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의 세계에 접할 수 있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글자를 몰라서 백성이 억울한 송사를 당하지 않도록 하고, 불경을 읽어 부처님의 자비를 느끼도록 하며, 양반의 전유물인 독서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한 세종의 의도는 백성을 향한 차원 높은 사랑에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글이 찌아찌아 어를 표기하는 도구가 된 것도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더불어 백성을 향한 창제자의 진정성이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부족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 하니 /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 이르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 결국 자기 생각을 (문자에) 실어 펼치지 /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히고 매일 사용하여 / (생활에)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 /(세종대왕 훈민정음 서문)  한글날을 즈음하여 학창 시절 입에 익힌 훈민정음 서문을 오늘날의 말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더불어 세종의 숭고한 마음을 생각하며 오늘날 세종과 비견할 위정자가 있을까, 쓸 데 없는 잡념에 빠져 봅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