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쌀 시장 격리(정부 매입)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19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안을 의결했다. 앞서 지난 12일 열린 안건조정위원회에서는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야당 몫으로 끼워 넣는 방식으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안건조정위는 민주당이 소수 야당이던 2012년 다수당의 입법 횡포를 막기 위해 관철한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조항인데 이를 스스로 무력화한 것이다. 민주당은 개정안이 "쌀값을 정상화하는 근본적 해결방안"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설사 그렇더라도 정부·여당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숙려 기간도 없이 국정감사 도중에 급히 처리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개정안이 민주당 주장대로 농촌 살리기에 도움이 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보다 5%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도 정부가 상황에 맞춰 재량으로 쌀을 매입할 수 있는 임의 조항이 있으나 이를 강제 조항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농민들이 쌀값 폭락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최선인지는 재고해 봐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개정안 시행 시 초과 생산량이 올해 25만t에서 2026년에는 48만t, 2030년에는 64만t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렇게 되면 쌀 매입과 보관 비용에 정부 예산을 매년 수조 원씩 투입해야 한다. 비축된 쌀은 수년 후 결국 사료용이나 주정용으로 헐값에 처분되는 실정이다. 예산이 한쪽에 과도하게 집중되면 스마트팜 지원, 청년 농업인 육성과 같은 정작 중요한 농업 구조조정과 농촌 선진화의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쌀 과잉 생산 구조를 고착화하고 대체 작물 재배에 대한 유인을 줄여 식량 안보에 악영향을 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쌀은 남아돌지만, 우리나라의 전체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으로 45.8%, 곡물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출근길 문답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농민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국회에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당부했다.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으나 상황이 그렇게까지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의결도 거쳐야 확정되는 만큼 여야가 합의를 이룰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민주당은 개정안이 농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자칫 농촌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은 없는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도 개정안에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농사를 지어봤자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깊이 인식해 국민과 야당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여아가 진정으로 농민들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절충점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연합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