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시인 김춘수(1922~2004)가 태어난 지 100주년, 세상을 떠난 지도 18년이 되는 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서울(경기중)과 일본(니혼대학) 유학 시절을 거처 마산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1961년 대구로 이주해 경북대학교 교수, 영남대학교의 교수와 문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1981년 4월부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서울로 이주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대구에서 많은 후학과 시인들을 길러냈다.    한국문단에서 순수시의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시 창작뿐 아니라 시 이론으로도 영향력이 컸으며, 언어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추구하면서 기존의 관념이나 선입견을 지우고 새로운 차원의 시를 받으려는 `무의미 시`를 추구하기도 했다. 그런 치열한 시정신과 끊임없는 열정 때문에 그는 가장 받들어지는 시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초기 시 `꽃`은 존재에 대한 인식의 세계를 아름답게 떠올리고 있어 널리 애송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사물 그 자체와 함께 존재의 심연이 이르려는 몸짓을 보여주며, 스스로 `사물화`됨으로써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인식의 공간을 열어 보이지만, 서정적인 외양과 아름다운 언어 구사로 시공을 뛰어넘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나`와 `너` 사이에 의미 있는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꽃`을 볼 수 있음을 암시하는 이 시는 그러므로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추구가 그 명제이며, 그 관계는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형성된다는 깨달음의 세계를 떠올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첫 연에서 서술하는가 하면, 둘째 연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내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나`와 `너`의 만남은 대상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줄 때 가능하다는 인식의 눈을 뜨면서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 달라고 그런 소망을 간절하게 토로하기에 이른다.  그의 `꽃`은 마지막 두 줄에서 그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되고 싶은 `꽃`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라는 구절에서 느끼게 되듯 `잊혀지지(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존재론적 소망을 담고 있는 마지막 연의 "우리는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는 구절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인식론이라는 철학적 명제를 끌어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춘수는 이 초기 시와는 달리 그 이후에는 은유와 상징 기법을 개성적으로 구사하며 `무의미시`를 지향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늙은 비애다/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나의 하느님`)라는 구절에서 읽게 되듯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뛰어넘고 있다. 성스럽고 정대적인 존재인 `하느님`을 `늙은 비애`로 규정하다가 푸줏간의 고기 살점으로 비약하고 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이질적인 것과의 결합을 시도하는 은유 기법을 구사한 경우다.  이같이 김춘수는 충격적이고 경이감을 동반하는 `창조적인 은유`를 추구 했으며, 연작시 `처용단장`은 상징 기법 중에서도 `개인적 상징`을 주로 구사했다. `긴장된 언어유희`를 통해 언어의 절대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언어미학을 구축했기 때문에 그의 시는 독보적이다.  독일의 시인 릴케의 영향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던 그는 만년에 다시 `의미`로 되돌아오기도 했지만, 한결같이 언어예술로서의 시를 치열하게 추구해 두꺼운 전집 두 권 분량의 주옥 같은 시들을 남겼으며, 특히 `꽃`을 비롯한 많은 시들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가을에 그의 시를 되새겨 다시 읽으면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을 새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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