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을은 물러가고 있었습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라며 릴케는 시 `가을날`에서 계절의 순환은 인간의 결과물이 아니라 신이 주관하는 섭리임을 다시금 마음에 각인시킵니다.  단풍나무가 아직 다 물들지도 않았는데 재작년에 사다 심은 어린 버찌나무는 미리 자연의 섭리에 다소곳하게 몸을 내맡기고 벌써 잎을 다 떨어버렸습니다.  이제 나의 작은 화단을 때의 요구에 맞춰 정리해야겠습니다. 시든 초화류의 줄기는 잘라서 묶고, 우듬지에 허옇게 바랜 꽃잎들을 아직 달고 말라가는 수국 꽃대도 정리할 생각입니다. 그런 다음 갈무리해 두었던 가을 구근들을 심을까 합니다.  수선화, 튤립, 크로커스, 아이리스 구근들을 심고 또 계절의 시계가 돌아서 봄이 되면 그들이 피울 꽃을 기다릴까 합니다.  구근(球根)은 말 그대로 둥근 알뿌리를 가리킵니다. 둥근 알뿌리는 자기 안에 식물이 생육하고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모두 갖추고 잎과 줄기와 뿌리를 그 안에 꽁꽁 숨기고 있습니다.  작은 알뿌리 안의 어둠 속에서 잎과 줄기와 뿌리는 자신만의 꽃을 피울 때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알뿌리는 작고 둥근 어둠 속에서 정말 자신이 꽃을 피울 수 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기약없음에 절망적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꽃을 피울 꿈을 쉬이 버리지 않음으로써 그는 어둠을 찢고나와 환하게 빛나는 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와 같지 않을까요?  누구든지 한번쯤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절망에 빠질 때가 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같은 암담함에 시달리지 말고 싶다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음을 잊지 않고 그 시간을 버텨내면 어느덧 절망을 열고 나갈 열쇠를 구해서 다시 삶을 이어나갈 힘이 생깁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전의 절망과 좌절로 아파했던 기억은 희미해져 버립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져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아마겟돈의 가능성까지 언급 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그로 인해 세계 경제는 요동치고 우리나라도 그 상황을 비껴갈 수 없어,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에게 취업의 문은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자칫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며 미래를 바라보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게 합니다.  더구나 이제 막 인생의 첫 걸음을 디딜 시기임에도 아직 적당한 사회적 위치를 부여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희망이란 죽어버린 단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 어느 도시의 슬럼가(街)에 위치한 고등학교의 한 교사가 자주 결석을 하며 학교 생활에 성실하지 못한 자기 학생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학생은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는데 벽에 낙서처럼 써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답니다. 아마 자기의 학생이 써 놓았을 그 글귀는 `The hope is nowhere(희망은 없다)`이었답니다. 교사가 그 글에서 자신의 학생이 처한 절망과 체념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글의 중간에 띄우기 기호와 쉼표 하나를 넣어 전혀 다른 글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The hope is now, here(희망은 지금, 여기)` 물론 자기 학생이 그것을 봐 주기를 기대하면서요. 관점을 바꾸면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릴 때 놀이처럼 허리를 굽혀 다리 사이에 놓인 거꾸로 된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것을 놓치고 삽니다. 마음에 꽁꽁 묶어둔 자신의 관점을 고집하며 세상이 바뀌어주기를 요구합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 한 지인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딱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그는 자주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 호소는 오히려 자신이 살아갈 힘을 다시 가지고 싶다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절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알뿌리는 자기가 꽃을 피워야 할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땅 속에서 견뎌내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짧은 개화기 동안 꽃으로 피고는 알뿌리로 돌아가 다시 어두운 절망의 시간들을 견디며 꽃피울 봄을 꿈꿉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 그는 점점 더 단단하고 둥근 뿌리가 되어 어지간한 겨울 추위에는 쉬이 무너지지 않을 내공을 지닐 것입니다.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이유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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