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 가운데 양심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씨인 양심(良心)이 있고, 심성(참된 본성)을 바르게 기른다는 양심(養心)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두 마음, 즉 겉 다르고 속 다른 양심(兩心)이 바로 그것이다.  양심(良心)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신성한 인간 본디의 성질이고, 양심은 죄의 고발자라 한다. 한 교육학자의 논설로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잊어버리고 있다. 즉 내 양심만 깨끗하다면 아무것도 나를 다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가 경솔했거나 또 무엇인가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원수가 생긴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내 양심이다. 양심이 약하거나 타락하면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멸한다. 많은 양심을 보존함으로써 그 인생을 가장 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사람들은 생각지 않고 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건강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 재물도 없을 것이며, 인생을 살면서 장점만 보이고 사는 사람도 없고, 육체도, 재물도 권력도 드디어는 소멸되어 버린다. 다만 사람의 마음만은 어떠한 난공불락의 요새보다도 위험하지 않고 튼튼한 것이다.  우리의 양심만 밝으면 그 내부의 세계를 침범할 어떠한 힘도 있을 수 없다. 양심과 명성은 두 개의 사물이다. 양심은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할 것이고, 명성은 이웃에 돌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매질하며 그 자체가 자기가 당하는 형벌이요, 교훈이 되는 것이다. 양심은 우리들의 영혼을 가책하고, 항상 예리한 재난을 떨어버린다.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서 "양심이란 위인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해버린다. 나쁜짓, 죄짓는 일은 꾸짖고 정지시키며 남을 중상모략하려면 야단친다. 양심이란 사람의 가슴 속에서 모반(반란)을 일으키는 괴물과도 같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생활에 큰 혜택이 있다면 모든 자유보다도 양심에 따라 자유로이 알 권리가 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이 말하며, 또 자기의 사상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자유국가의 국민적 의무가 되었다,  양심-그것은 누군가 남이 보고 있다고 속삭이는 내면에서 생기는 소리다. 양심-그것은 남들이 모두 즐기고 있을 때 혼자 괴로워하는 것이다. 양심-생활이 넉넉한 사람의 취미라 한다.  시인 괴테는, "양심은 지성있고 자유로운 한 존재의 확고한 안내자이고, 선악에 대한 올바른 심판자이며, 인간을 신과 닮게 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우수성과 인간행위의 도덕성 낳게하는 것이고, 의무라는 중하(책임져야 할 무거운 짐)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양심뿐이라"했다.  소설 오발탄의 작가 오범선은, 양심은 손 끝의 가시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통증같다. 이처럼 양심의 질식이 자주 되풀이되면 곧 양심이 마비되는 것이고, 양심이 기를 잃으면 부정·불의·죄악과도 기탄없이 감행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양심은 자기 자신의 정신적 본원에 대한 의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생활의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정념 때문에, 욕망 때문에, 양심에서 벗어나면 오직 자멸의 길밖에 없다는 사실에 일생을 걸라고 했다.  양심(良心)은 언제나 온전한 것이고, 불변한 것이지 양심(兩心)이 된다면 모든 생각에 사달이 생긴다. 교훈으로 남기는 격언과 속담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영국-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데가 없으면 매일이 축제다. 프랑스-양심에 충실하면 만사가 평온하다. 이탈리아-양심은 간지럼 같아서 타는 사람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 페르시아-옷은 세탁할 수 있지만 양심은 세탁할 수가 없다. 양심은 언제나 침묵이라는 형태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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