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중국 청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40대 초반 재중교포 3세 부부가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 서울에도 사무실을 두고 식품업무역을 하고 있는 의욕적인 실업가였다. 면식이 전혀 없는 귀한 교포가 찾아 왔기에 반갑게 맞이하였다. 부인은 조선족이라 우리말을 잘 하였으나 아들은 우리말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서 영어로 간단히 의사전달을 하였다.   어떻게 여(余)를 찾아 왔느냐고 물으니 종친회 사무실에서 소개해 주어서 왔다는 것이다. 먼 청도에서 이곳까지 귀한 걸음을 한 목적은 족보 때문이었다. 일제 때 그의 할아버지가 청도로 이사 갈 때 지니고 갔던 구보(舊譜)를 가방 속에서 꺼내어 보이며 종가를 찾아 그 세계를 알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조졸(早卒)하고 조부 슬하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국교가 정상화되면 반드시 모국(母國)에 가서 종가(宗家)를 찾아 세계(世系)를 알아보고 자손들을 문중족보에 꼭 올려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동반하였다고 말했다.   100여년을 소중히 간직해온 『경주김씨세보』라는 족보를 보이면서 세계(世系)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할아버지의 유언(遺言)을 명념(銘念)하고 고국을 찾은 그 청장년의 건실한 위선(爲先)의 마음이 고결하여 자세하게 살펴보니, 경주김씨영분공파 부사공 후예로 월암공 김호장군의 계자(季子) 후손이었다. 그래서 포석 소재의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한 후 월암공 재실과 신도비에 참배하고 식혜곡 월암고택에 가서 종부를 만나게 하여 사당에 알묘(謁廟)를 시켰다. 족보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의 선원세계를 알려고 하는 그의 마음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세계(世系)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계통, 혈통, 가문, 가계 혹은 족보를 말하고, 생애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 있는 한 평생의 기간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가정이라는 단위 조직에서 생장하여 조상의 유업을 이어 받고 후대에 전승하면서 패밀리 소사이어티(familiy society)를 형성하여 생활해 오고 있다. 이 패밀리가 수많은 세월과 더불어 방대한 씨족 네트워크(clan network)를 이룩한 것이 패밀리 라인(family line) 즉 세계 혹은 가계이다.   가계는 혈연적 유대의 범위를 결정하는 사회의 출계원리에 따라 인지되거나 제도화되어 내려오는 한 집안의 계통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며, 선대의 입장에서는 대(代)를 물린 결과이며, 후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선대를 인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가(家)’, 즉 집안은 세계가 거듭될수록 당내, 문중과 같은 가족 단위 이상의 조직체 또는 비조직적인 범주로 그 네트워크의 인지 범위가 확산된다.   네트워크는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사회학적 지위나 집단이나 조직을 연결시키는 관계의 묶음이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집단이나 조직이 움직이는 이유 등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으며, 개인적 경험이나 행동, 성과 등이 네트워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또한 네트워크는 구속력을 갖고서 선택에 제한을 가하고, 여러 가지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을 공급한다. 따라서 사람의 차이는 네트워크가 다르거나 같은 네트워크에서의 차이 나는 위치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개인의 어떤 행동 특성이 그가 속한 혈연관계에 따른 독특한 유전적 영향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종단적으로 검증하는 가계연구를 해 왔다.   갈톤(F. Galton)은 1869년에 그의 저서 “Hereditary Genius”에서 천재성은 선천적인 것이며 유전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덕데일(R. Dugdale)은 1877년에 막스 주크(Max Juke: 가명임) 집안에 대한 종단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음주를 좋아하고, 성관계가 문란하고, 계획성 없이 생활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던 주크(Juke)의 후손 대부분은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매춘부 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윈쉽(A. Winship)은 주크와 비슷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에드워드(Edward)의 후손을 연구하였는데, 이들은 조상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고다드(H. Goddard)는 칼리칵(Kallikak)의 가계 연구를 통하여 정신지체의 유전성에 대해 보고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 따르면 이들의 연구 방법에 신뢰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지만, 범죄나 정신지체의 원인이 유전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당시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우리나라는 고래로부터 문중이라는 패밀리를 형성하여 그 나름의 가율에 따라 의방지훈을 가르치며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는데 관심과 노력을 집중하면서 세계를 이어왔다. 그 세계에 대한 이해는 조선(祖先)이 어려운 생활환경을 극복하고 어떻게 생애를 살아 왔는가에 대한 삶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금세는 저출산으로 인해 가계가 소멸되고 있어서, 세계의 중요성 또한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듯하여 안타까웠는데, 이 청장년 중국 교표가 세계를 알기 위해 모국을 찾아 온 그 교훈적 위선지심에서 패밀리 라인(family line)의 소중함을 볼 수 있었기에 흐뭇한 미소를 아니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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