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펑펑 내린다. 허공에서 내려오는 무수한 눈송이가 흡사 흰 나비 떼 같다. 이것을 바라보노라니 문득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커피를 내리려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 때 싱크대 선반 위 찻잔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손잡이에 금색이 도금된 찻잔이었다. 지난 필자 생일, 막내딸이 선물해 온 찻잔이다. 그동안 둔탁하고 무게감 있는 머그잔으로 차를 마셨다. 실수로 떨어트리거나 찻잔을 씻을 때 설령 이가 빠져도 그다지 아깝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의해서였다. 이렇듯 아껴온 예쁜 찻잔을 보는 순간이었다. 곁에 자리한 별반 모양새 없는 그 머그잔이 오늘따라 뚝배기처럼 투박하게 눈에 비쳤다. 그것을 대하자 다루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볼품없는 찻잔을 애용해 온 게 마음에 걸렸다.‘왜? 내 자신을 이토록 함부로 대했을까?’라는 후회 때문이다. 평소 타인이 나를 존중하고 아끼길 바랄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사랑했어야 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헌 머그잔을 가차 없이 쓰레기 분류함에 내동댕이쳤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는 전원주택이 결코 부럽지 않은 장소에 위치해 있다. 호수 수변水邊 둘레길 곁에 지어서인지 목가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그래 집밖만 나서면 손쉽게 자연과 접할 수 있다. 안방에서 바라보면 사시사철 변화하는 주변 경치 또한 그야말로 자연 속에 묻힌 듯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지곤 한다. 특히 안방 서쪽에 자리한 큼지막한 유리창 밖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다.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야트막한 산의 능선을 비롯 봄이면 정원에 우거진 수목들이 피우는 꽃들은 지상 낙원을 연상케 한다. 이 창문을 통하여 소리 없이 내리는 흰 눈을 바라보노라니 왠지 가슴이 설렜다. 이 정경을 마주하며 예쁜 찻잔에 가득 커피를 담아 마셨다. 분명코 예전과 다른 맛이었다. 이로보아 음식은 눈으로도 그 맛을 음미한다는 말이 맞는 성 싶다. 또한 갑자기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행복한 마음이 충만해 옴을 느꼈다. 마치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차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그곳에서 창밖에 내리는 흰 눈을 하릴 없이 바라보며 모처럼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만끽 하는 듯한 호사를 누리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심리적 변화를 겪자 남승규가 지은《행복 심리학p47》에 표기된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그는 ‘행복은 더 이상 변화가 힘들다는 인식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든지 현실을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 된다’라고 언술했다. 그의 언명처럼 비록 찻잔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이렇듯 마음이 행복할 줄이야…. 언제부터인가보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날 코로나 19 창궐 후 일어난 심신 변화란 말이 맞다. 당시 사회적 거리로 행동반경이 급격히 줄어들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요즘 코로나 19는 수그러들었지만 가슴 속 우울함은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 탓이런가. 늘 가슴 속은 잿빛으로 얼룩진 상태다. 매사 의욕도 없고 밤이면 잠도 제대로 못 이뤘다. 가슴이 답답하고 때론 까닭 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었다. 여행을 했지만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광 앞에서도 꽉 막힌 듯한 가슴은 쉽사리 시원히 뚫리지 않았다. 명품 가방도 사 보았다. 그것 역시 별다른 위안을 안겨 주진 못했다. 지난 수 년 간 어찌 보면 행복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면 지나칠까.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여 삶의 습윤濕潤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무기력으로 인하여 점점 자신이 우울의 늪으로 침잠하기에 이르렀다. 싱싱했던 푸성귀가 여름철 고온다습한 날씨에 제 빛을 잃듯, 시들시들 심신이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눈빛마저 흐릿해진 듯하다. 얼굴에 생기라곤 없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이 이렇게 심각한 증세일 줄 어찌 알았으랴.   이즈막은 추위 탓인지 날이 갈수록 바람 빠진 풍선마냥 점점 심신이 움츠러든다. 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 어느 날 마음에 떠오른 무지개가 필자 삶을 바꿨다. 그것의 실체는 거창하지 않았다. 황금색으로 컵 테두리를 두르고, 손잡이가 도금된 고급스런 모양을 갖춘 한낱 찻잔에서 얻은 무지개여서다. 참으로 시시껄렁한 소소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럼에도 이것으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왜? 이리 가슴이 훈훈해지고 행복할까?   이 때 남승규가 이 책에서 전해준 행복 지침 내용에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 동료나 낯선 사람에게 맨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행동,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며 현재의 시간에 충실해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내용 중에서‘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란 내용이 가장 큰 울림을 준다. 굳이‘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곁에 있다’라는 말을 되뇌지 않아도 될 법하다. 행복은 늘 우리 곁에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잖은가.   속절없이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밝아오는 2024년도 희망찬 새해엔 올해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영위하여 행복을 일구는 일에 전념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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