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편을 따라 해협을 건너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지만, 그 후 남편과 사별하거나 혹은 헤어져 한국에서 고된 삶을 살아야 했던 일본인 할머니들이 과거에는 많이 계셨다. 그때 갈 곳 없던 이러한 재한일본인 부인들을 보호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던 민간 복지시설이 바로 경주 ‘나자레원’이다.   지난해 12월 14일,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주부산 일본국 총영사 관저에서 경주 나자레원 설립 50주 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했다. 이원식 전 경주시장을 비롯해 경주시사회복지협의회, 경주시 사회복지사협회, 자선 단, 우봉복지재단 및 경주시 사회복지 관계자 50여 분을 모신 가운데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를 실천해 온 나자레원의 발자취와 활동을 기렸다. 나자레원은 초대 원장이셨던 고(故) 김용성 선생이 1972년 대전교도소에 수감 돼 있던 두 명의 일본인 여성을 거두어 돌보면서 시작됐다.   생활이 어려운 많은 일본인 부인들을 보살펴 왔던 김용성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이곳 나자레원에서 지내시는 일본인 할머니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한국인 남성을 선택해 사랑한 죄밖에 없습니다. 할머니들은 이 나라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와 숱한 고생을 한 분들입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회복지에 국경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난하고 고달프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재한일본인 부인들이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도록 마련된 나자레원은 처음에는 ‘귀국자료(寮) 나자레원’으로 불렸었다. 실제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일본으로 영주 귀국한 여성만 147명이며 사망하신 분도 100여 명이나 된다. 반면에 일본에 돌봐 줄 가족이나 친지가 없어 영영 돌아가지 못했거나,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돌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런 연유로 나자레원을 평생의 안식처로 삼고 지냈던 할머니들이 많아져 80년대에는 그 수가 30명을 넘었다고 한다. 나자레원의 이런 배경과 상황을 전해주는 책이 1982년에 일본에서 출간됐는데, 가미사카 후유코(上坂冬子) 작가가 쓴 《경주 나자레원》이다.   나자레원에서 생활하는 재한일본인 부인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을 통해 이 분들의 존재가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헌신적인 나자레원의 활동에 많은 일본인들이 감동했다. 1985년 당시 필자는 주한일본대사관에 부임해 근무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히 기억 한다. 2022년 필자는 나자레원을 방문해 김용성 원장님의 뒤를 이어 할머니들을 돌보고 계신 송미호 원장님을 다시 만났다. 마침 그때가 나자레원 설립 50주년을 맞는 해였는데, 송 원장님께서는 코로나 확산을 우려한 이유도 있지만 나자레원에는 할머니 세 분밖에 안 계시기에 따로 특별한 행사는 하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과거 수백 명에 달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돼 주고, 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그 분들을 돌봤던 나자레원이 이제 사명을 다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를 실천해 온 나자레원이 한일 관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양국 관계가 어떤 때는 좋기도 하고 때로는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나자레원의 존재는 항상 우리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어떤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필자는 나자레원이 해온 일들을 돌이켜보며, 지금까지 나자레원을 지켜 오신 지역 관계자 여러분을 모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뜻을 송 원장님께 전했다.   그렇게 해서 앞에서 언급한 나자레원 설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열 수 있었다. 지난해 한일 관계는 현저하게 개선됐다. 연간 900만 명 이상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양국을 서로 오갔는데 이는 코로나 유행 이전의 수준에 육박하는 수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岸田) 총리는 7차례의 만남을 가지며 한일 정상 간 이른바 셔틀 외교가 재개됐다. 한일 관계는 회복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양국 관계가 이렇게 빠르게 개선된 데에는 나자레원과 같은 민간 차원에서 오랜 세월 쌓아온 강한 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고 김용성 원장님, 송미호 원장님을 비롯한 나자레원 여러분, 그리고 나자레원을 지원해 주신 경주지역의 사회복지단체 관계자 및 경북신문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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