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등단해 50년 동안, 1000여 편의 시를 쓴  경주의 김성춘(82) 시인이 최근, 대가다운 면모의 ‘따스하고 명징한 위로’의 시편들을 한 권 시선집으로 엮어냈다.
 
김성춘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만인사)’로 ‘시와 함께 평생을 문학적 향취 속에 동고동락했던 기적 같은 삶’의 기록에 다름없는 시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시선집을 내며 시인은 “등단 50주년이라는 세월이 믿기지 않는다”면서 “그동안 문학적 노력에 큰 결실도 없는 것 같아 솔직히 부끄럽다. 많은 세월, 시의 외곬로 정진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고 겸손해했다. 이번 시선집은 첫 시집 ‘방어진 시편’부터 14번째 시집 ‘길 위의 피아노’까지 총 1000여 편 시의 이삭들을 수습해 모두 7부로 나눠 선집에 묶었다.1부 ’방어진 시편‘에서는 바하를 들으며, 섬. 비망록, 오월, 그 들판에 쓸리던 엉겅퀴꽃 외 2부 ’방어진 가는 길‘에서는 새벽 바다, 동화, 외 3부 ’달과 아버지‘에서는 경주 왕릉 앞에서, 말러를 듣다 외 4부 ’물소리 천사‘에서는 천사, 짧아지는 나의 시 외 5부 ’온유‘에서는 귀로에서, 깊고 푸른 경주 외 6부 ’길 위의 피아노‘에서는 즐겨라, 저 봄비, 아침의 조문, 오규원의 편지 외 7부 ’들오리 기차‘에서는 희망의 정석, 달의 뒷면 외 여러 시편들을 묶었다.
‘안경알을 닦으며 바하를 듣는다./ 나무들의 귀가 겨울쪽으로 굽어 있다./ 우리들의 슬픔이 닿지 않는 곳/ 하늘의 빈터에서 눈이 내린다./ 눈은 내리어 죽은 가지마다 촛불을 달고 있다./ 성聖 마태 수난곡의 일악구一樂句./ 만리 밖에서 종소리가 일어선다./ 나무들의 귀가 가라앉는다./ 금세기今世紀의 평화처럼 눈은 내려서/ 나무들의 귀를 적시고/ 이웃집 그대의 쉰 목소리도 적신다./ 불빛 사이로 단화음이 잠들고/ 누군가 죽어서/ 지하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김성춘, 등단작 ‘바하를 들으며’ 전문.
 
이들 시에서의 ’시적 이미지는 유한성의 균열을 무한성의 개방으로 돌리는 대신, 그 공백을 상실의 충실성을 담은 슬픔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얻는다. 그 슬픔은 읽는 내내 ‘따스하고 명징한 위로’였으니 ‘시인은 슬픔의 공백을 보는 사람’이었다.그래서 평론가 김재홍 시인은 “시의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언어 감각은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지 않고, 물리적 운동과 정신적 유동이 함께하는 비대칭의 감각을 뿜어낸다”고 평한다. 시인은 특히 바다를 많이 노래했는데 바다는 삶 그 자체이자, 언제 만나도 장엄하고 가깝고도 먼 심연의 얼굴이었다고 돌아봤다. “그것은 소년기에 만났던 부산의 바다와 젊은 시절 울산 방어진에서 만났던 일상 속의 바다 체험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그러면서 시인은 “험난한 세파 속에서도 나를 시와 인생의 길로 이끌어주신 큰 스승인 목월 선생과 박남수 선생, 김종길 선생을 만난 것은 축복이고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시와 평생을 동고동락한 것은 기적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고 되짚었다. 권주열 시인은 김 시인의 시세계를 ‘따뜻한 슬픔’과 ‘명징한 슬픔’, ‘슬픔, 혹은 여백’으로 표현하며 작품을 설명했다. 먼저 ‘따뜻한 슬픔’으로 들여다보면서 시인은 일생 ‘바다’를 시대적 장소로 두고 있다고 봤다. 바다는 있음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없음의 형태로 나타나는 그 자체로서의 공백이나 상실로 바라본 것이다. 
 
“대체로 화자의 초기 시편들의 바다는 대체로 천진하고 청진하게 묻어난다”며 명랑한 동심의 이미지로 변주돼 넉넉한 이웃 아저씨 같은 슬픔의 손을 잡고 순진무구하게 표현됐다. 또 오랫동안 교단에서 음악을 가르친 화자의 유별난 청각적 감수성이 공간으로 퍼지는 빛이 소리의 파동으로 치환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명칭한 슬픔’으로 접근하면서는 “울산 바닷가에서 경주로 정착한 이후 화자의 시편들은 더 다양해지고 활달해졌다”며 “시인은 그 깊이 속에서 공집합으로 남은 존재의 슬픔을 꺼내고 있다. 시인은 존재의 슬픔을 시시콜콜 설명하거나 언어적 맥락화로 매몰되지 않고 아름다운 동화의 표지처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슬픔 혹은 여백’으로 바라보는 측면에서는 “텅 빈 슬픔을 타자에 의해 셈해지던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주체의 개념으로 새롭게 단장한다”고 바라봤다. 평론가 김재홍 시인은 “이제 팔순의 대가는 ‘나는 아직도/달의 뒷면을 모른다.(‘달의 뒷면’)‘고 말한다. 박목월과 김춘수와 오규원과 함께, 또한 바흐와 세자르 프랑크와 부르크너와 함께 그가 지나온 감각의 바다가 달빛을 받고 있다”고 평했다. 김성춘 시인은 1942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사범학교,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석사) 졸업, 1974년 ’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방어진 시편‘, ’흐르는 섬‘, ’섬 비망록‘, ’비발디 풍으로 오는 달‘, ’물소리 천사‘, ’온유‘, ’아무리 생각해도 먼 곳이 가까웠다‘, ’길 위의 피아노‘ 등 14권과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를 출간했다. 울산문학상, 바움문학상, 최계락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한국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