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라천년의 고도와 연관, 관광도시라고 말할 것이다. 숱한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고 그것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이 연중 끊이지 않는 곳이 경주이다. 오래전부터 학생들의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 1순위로 꼽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주를 다녀갔을 정도이다. 최근 들어서는 원자력을 새로운 경주시의 성장동력으로 삼자는 움직임이 활발해 실사구시적 측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선 관광만으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관광과 병행, 첨단산업도시를 꿈꾸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관광과 원자력은 경주시가 선택해야 할 당연한 귀결로 보여진다. 그러나 경주시는 천년역사도시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도시의 정체성도 그러한 역사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재)명동 정동극장이 내놓은 미소시리즈는 경주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미소2 신국의 땅 신라’는 신라천년의 역사를 뮤지컬로 표현한 걸작이었다. 신라의 시조탄생의 신화와 건국, 신라통일의 꽃 화랑의 꿈과 야망, 사랑과 르망을 춤과 음악으로 형상화한 대서사시였다. 물론 70분 동안의 공연으로 천년신라의 모든 것을 전부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앞으로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야 하겠지만 그 시도만은 경주문화 엑스포를 앞둔 시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같은 시도는 진작부터 시도돼 천년신라를 대표할 수 있는 종합공연물이 일년내내 공연될 수 있어야 고도경주의 모습이 그런대로 격을 갖출 수 있었지만 이번 시도가 그러한 여망을 풀어주었다. 누군가가 그랬지만 잠들어 있는 천년신라의 신비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 경주가 가야 할 미래라는 말이 실감나는 계기가 ‘미소시리즈’였다. ‘미소시리즈’를 출발점으로 경주시는 문화적 대각성을 시작해야 한다. 경주세계문화 엑스포도 시대에 맞게 문화를 재해석하는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아직도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지 수준의 문화인프라로는 경주다운 역사도시를 내보일 수 없다. 도시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유적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1차산업적 관광패턴을 과감히 벗어나 신라문화 전반에 대한 대각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음악과 춤에 국한되지 않는다. 천년의 세월에도 풀리지 않는 조형과 건축의 신비, 출토된 갖가지 유물에 묻혀 있는 미술, 그 시대의 정치를 말하는 화백제도, 화랑의 애국정신과 호연지기, 불교문화의 신비, 이두문자와 향가에 나타난 그 시대의 애환, 천문과학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문을 흔들어 깨운다면 경주는 세계속에 우뚝 서는 역사관광도시로 그 정체성을 뚜렷하게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봉건사회에서 한 왕조가 천년이상 유지된 곳은 신라가 유일하다. 군주가 독재하지 않고 화백제도를 통해 각기 다른 혈통이 번갈아 집권하는 형태도 아마 유일한 통치체제였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조상의 우수성이고 세계에 자랑할 거리가 된다. 따라서 ‘미소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연관해서 경주의 역사와 문화도 이제부터 심도 있고 떳떳한 재발견을 시도해야 한다. 이는 경주지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범국가적 각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할리우드에 영화가 있고 짤스부르크에 오페라가 있듯 경주에도 경주다운 것이 있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자랑거리가 돼야 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성장동력으르 외면하고 ‘천년고도’에만 매달리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창 거론되고 있는 원자력 클러스터 조성도 경주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원자력의 집적화는 경주라는 지역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될 수 있다. 한국 원자력의 메카도 지역의 훌륭한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천년고도의 정체성을 살려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온 옛 선조들에 대한 도리이다. 경주를 관광 온 사람들이 경주엑스포 공연장에서 뮤지컬을 볼 수 있도록 발전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잠들어 있는 천년신라의 신비가 이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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