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대구문화재단 대구문학관에서는 오는 30일 오후 3시 스물한 번째 문학토크로 대구를 대표하는 천재화가 이인성을 주제로 권원순(미술평론가)의 강연이 진행된다. '한국의 고갱', '대구가 낳은 천재 화가' 등 늘 그의 이름 앞에는 화려한 수식어 들이 붙는다. 대구문학관에서 지난 8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대구문학로드 곳곳에는 많은 문인들의 자취 뿐 아니라 함께 활동했던 이인성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대구문학관 인근의 생가부터 대구근대문학의 태동(대구문학로드 A코스)에는 그가 다녔던 수창보통학교, 이인성양화연구소가 있으며 대구문학관 3층 작가와의 동행 코너에는 그가 26세에 운영했다고 알려진 아루스 다방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11살이 되던 1922년 대구수창보통학교에 입학한 그는 남다른 그림솜씨로 인기와 관심을 받았다. 당시 3학년 담임이던 이영희 선생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훌륭한 화가가 되고자 결심을 하고 1927년 사생을 나갔다가 만난 영과회 회원들과 조우를 통해 서동진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듬해 1928년 수창보통학교를 졸업 후 가정형편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으나 영과회와의 짧은 만남이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로 이어져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배우게 됐다. 이인성은 그해 10월 '세계아동미술전람회' 수채화 '촌락의 풍경'을 출품해 특선을 수상하고 그 이후 국내 미술상을 거의 휩쓸다시피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무릎 쓰고 야외 스케치에 전념한 그는 1929년 18세의 나이에 조선미전에서 최연소 출품자로 입선을 하고 이듬해에도 연이어 수상을 하게 된다. 그의 천부적 재능을 높이 산 대구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35년 동경유학생활을 마감하고 금의환향 한다. 이후 대구최초의 '대구양화연구소'를 열고 순수예술다방 '아루스(ARS)' 의 개업 준비에 들어간다. 이인성은 1937년 마당이 넓고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 마당 한쪽을 개조해 아뜰리에이자 쉼터인 '아루스'라는 이름의 예술다방을 만든다.  대구의 첫 한국인 다방인 '아루스'에는 그의 작품 '한정'에 대한 사건이 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이인성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사람들의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심재찬 대표는 "이인성은 대구의 중요한 문화인물 중 한사람으로서 이번 강연을 통해 화가 이인성 뿐 아니라 그의 삶을 함께 느껴보고 아울러 대구문학관에서 운영 중인 대구문학로드, 나아가 이인성 관련 프로그램들과 연계되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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