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세기 초 통일신라 시대 석탑양식의 변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경주 미탄사지 삼층석탑(慶州 味呑寺址 三層石塔)'이 11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28호로 지정됐다. 경주 황룡사지 남쪽 아래(경주시 구황동 433번지 인근) 있는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벗어난 변화적인 요소를 나타내고 있는 석탑이다. 당시 시대적으로 석탑의 크기를 줄여 만드는 흐름이 있었는데 미탄사지 석탑은 오히려 규모가 큰 편으로 제작되면서 그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탄사지 삼층석탑은 9세기 혹은 1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6.12m의 규모에 총 35매의 부재로 만들어 졌다. 일반적인 석탑의 판축(板築)기법과 달리 잡석(雜石)과 진흙을 다져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한 단이 완성될 때마다 굳히면서 쌓아나가는 기초부의 판축 축조방식을 사용했다. 점이나 기단부 적심(積心 초석 아래 돌로 쌓은 기초 부분) 내에서 지진구(地鎭具 땅속의 신에게 빌기 위해 매납하는 물건이나 제기)가 출토된 점 등도 특이해 한국석탑에 관한 연구의 실증적 자료로서 큰 의미가 있다. 1980년 전까지 기단부와 탑신부(塔身部 : 몸돌과 옥개석을 차례로 얹어서 각 층을 이루는 부분)의 일부 부재가 소실된 채 방치돼 있다가 당시 남은 부재들을 활용해 복원됐다. 소실된 부재는 새 부재를 치석(治石, 돌을 다듬음)해 조립했다. 파손되고 결손된 부재는 새 재료로 보강·보충해 구 재료와의 이질감은 있지만, 최초로 신라석탑 기초부의 형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를 실시한 석탑이라는 점과 그 형태가 정연하고 적절한 비례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편 탑이 세워져 있는 구황동 일대는 미탄사(味呑寺)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미탄사는 통일신라시대 황룡사 남쪽에 위치했고 고려 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이나 건물을 드나들던 출입 시설인 문지(門址)도 2차례 이상 중건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장성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