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역대 최소 득표차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정치 경험이 없는 비정치인 출신, 검찰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 모두 사상 최초다. 검찰총장 직을 내려놓고 정계로 진출한 윤 당선인은 255일 동안 제1야당 대선 후보 자리에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대권을 거머쥐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시 9수 끝에 검사로 입직
1960년 윤 당선인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교수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 당선자의 부친은 소득 불평등과 통계학 분야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다. 1979년에는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5·18 민주화운동 직전인 1980년 5월 8일, 윤 당선인이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 일로 윤 당선인은 당시 외가가 있던 강원 강릉시로 3개월 동안 피신해야 했다.두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不同視)’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에선 번번이 낙방했다.이 때 윤 당선인은 친구·후배들과의 술자리와 토론을 즐겨 ‘신림9동의 신선’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렇게 1991년,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4세의 윤 당선인은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정권 실세 눈치보지 않는 강골 검사
2002년 잠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 넘게 변호사로 근무하다가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늦깎이 검사로 평범한 이력을 거치던 윤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 들어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들에 잇따라 투입되며 ‘특수통 검사’란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03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정무팀장)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인 정연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2006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맡아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했으며, 2011년에는 부산 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등 정권 실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하는 강골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은 일은 윤 당선인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 수사팀은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정치관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는데, 같은해 9월에는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했고, 윤 당선인은 수사팀에서 배제됐다.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당선인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나, 야당이 이걸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을 하겠냐'라고 말했다"며 정권과 검찰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그러면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는 작심 발언을 남겼다.◆평검사로 좌천… 국정농단 사태로 부활
이후 윤 당선인은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지방 고검을 떠돌며 4년 간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한 윤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윤 당선인은 박영수 특검의 지휘를 받아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과 호흡을 맞춰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그리고 탄핵의 핵심 주역으로 떠올랐다.적폐청산을 앞세웠던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대전고검 검사였던 윤 당선인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한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을 맡았던 한 부원장과 함께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구속 기소하는 수사를 이끌었다. 약 2년 뒤인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임명한다.◆또다시 정권과 반목… '살아있는 권력'에 칼 겨눠검찰 수장이 된 윤 당선인은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대로 행동했다가 또 다시 정권의 눈밖에 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비리 의혹,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의혹 등을 둘러싼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여기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조작 의혹 수사까지 밀어붙였다. 모두가 여권의 핵심 인사 및 정책과 연관된 수사들이었다.윤 후보는 정부·여당 인사들은 물론, 여권 지지자들에게 맹폭을 받으며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윤 후보는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의견을 들은 뒤 “수사를 안 하면 우리가 검사냐”는 말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조 전 장관의 후임자인 추미애 전 장관은 아예 윤 후보와 1대 1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공개적인 거취 압박에 나섰다. 윤 당선인의 측근들은 뿔뿔이 지방으로 흩어졌고, 그해 11월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집행 정지 명령까지 내려졌다.◆국민의힘 대선 후보에서 대통령 당선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같은해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같은 해 7월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입당 뒤에는 홍준표 의원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과 당내 경선을 벌여 최종 득표율 47.85%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국민의힘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박빙 우세’로 분석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이재명 후보에 우세지만, 오차 범위 내 결과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윤 당선인은 안 후보와 지속적으로 단일화를 시도한 끝에 지난 3일 ‘정권교체’라는 명분 하에 뜻을 모으는데 성공했다.9일 치뤄진 20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초박빙이었다. 윤 당선인과 이 후보의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최종 투표율은 77.1%로 지난 19대 대선보다 2%포인트 높았다. 윤 당선인은 이 후보에 0.8% 차로 승리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