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읍성 안에서 발견된 석조(石槽)는 장방형 또는 원형의 돌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던 것이다. 이 석조에는 많은 글이 새겨져 있어 이것이 어디에 있었고 어디로 옮겨졌는지 그리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석조의 윗부분에는 경주 부윤(府尹:지금의 시장) 이필영(李必榮:1573~1645)이 조선 인조(仁祖:재위 1623~1649) 16년(1638)에 이 석조를 흥륜사(興輪寺)에서 경주읍성 안 금학헌(琴鶴軒)으로 옮겼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니까 신라 최초의 절인 흥륜사에 있던 것을 1600년대에 경주읍성 안으로 옮겼다는 것인데, 이 석조의 수난은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 내용이 새겨진 반대편에는 이교방(李敎方)이 무자년 유두날 이 석조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七言絶句)가 있다. 이 시에서 경주읍성에 있던 석조가 이요당 앞으로 옮겨졌고 그 석조에 연꽃을 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요당(二樂堂)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바로 남산(南山) 칠불암(七佛庵) 올라가는 길목의 조그마한 못인 서출지 옆에 있는 아담한 정자다. 석조 측면에는 ‘하늘 빛, 구름 그림자’라는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朱憙:1130~1200)가 지은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나오는 구절이다. 석조에 고인 맑디맑은 물, 물에 비치는 새파란 하늘 빛, 그리고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보며 옛사람들은 주희의 시구(詩句)를 떠올렸지 않을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