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역대 대통령 부인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선두권을 이루는 육영수, 이희호 두 사람에게는 닮은 점이 있다.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범접할 수 없는 실세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후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된 자식들이 비리로 감옥에 가 부모 명예에 먹칠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영부인인 자신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다는 게 후세의 평가다.충북 옥천의 지주의 딸로 태어난 육 여사는 금수저답지 않게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고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수돗물을 아끼려고 벽돌을 변기통에 넣어 사용했고, 외국 정상 내외를 만난 자리에서도 국산 가방과 의복을 고집했다. 의사 아버지를 둔 이 여사도 육 여사 못지않은 금수저였으나 평생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재물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청와대 안주인이 돼서도 동교동 사저에서 옮겨온 침대 말고는 전임자인 손명순 여사가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썼다. 2019년 별세하면서 남긴 유산은 동교동 사저와 노벨평화상 상금이 전부였다.두 사람이 존경받는 건 청렴 때문만은 아니다. 약자를 위한 봉사 활동에 매진해 육 여사는 전국에 산재한 한센인 마을과 보육원, 빈민촌을 돌며 그들의 애환을 복지정책에 반영했다. 이 여사는 삶 자체가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역사로 여겨질 만큼 여성의 인권 향상에 일생을 보냈다. 두 사람은 '청와대 내 야당'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돼 측근들이 전하기 힘든 민심과 야당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하는 등 남편이 국정운영의 초심을 잃지 않도록 했다.육영수 여사를 롤모델로 삼았던 김건희 여사가 공천 개입 혐의로 검찰 출석 통보를 받았다. 육 여사 사후 이순자 여사부터 김옥숙, 권양숙, 김윤옥, 김정숙 여사에 이르기까지 과거 영부인들이 이런저런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불명예를 안은 터라 또다시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다음달 3일이면 조기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영부인도 탄생한다. 국민이 뽑는 건 대통령이지 공식 직함도 없는 영부인이 아니라지만, 최소한 권력의 불나방들이 영부인과 그 주변에 꼬이지 않도록 촘촘한 친인척 감시체계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