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조선 후기의 위인인 정조를 유세장에 불러냈다. "선조는 환란을 불러들여 산천을 피로 물들였고 정조는 조선을 동아시아 최대 부흥국가로 만들었다"면서 국민의 충직한 도구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또한 "세상에 왼쪽 날개도 있고 오른쪽 날개도 있어야 한다"며 통합과 실용을 말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무능하고 편협한 선조에 빗대면서 그들과 달리 유능하고 관대한 정조처럼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으로 읽힌다.정조는 조선왕조 518년 역사에서 세종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 성군으로 칭송받고 있지만, 역사 드라마에서 나오는 온화하고 사려 깊은 군주는 아니었다. 독선적이고 괴팍한 할아버지 영조를 빼닮았으며 정치 영역에선 음험하고 비열하다는 인상까지 줄 정도로 노회했다. 정조의 두 얼굴은 보수 강경파인 심환지와 외롭게 싸우는 척 하면서 그에게 몰래 보낸 수백통의 어찰에서 잘 드러난다. 정조는 반대파를 구워삶으려고 측근을 내치기까지 했다. 심환지와 각을 세우는 소장파 김매순을 폄하하고 충신 서영보를 후레자식(胡種子)이라고 막말을 했다. 이 후보는 가는 곳마다 "정적을 싹 제거한다면 우리끼리만 남는 게 가능하냐"고 되묻고 있다. '우리끼리'로 갔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달리 소위 '자유 우파' 인사까지 영입한 것으로 봐서는 선거용 구호는 아닌 것으로 비친다. 통합 메시지의 효과는 고무적이다. 각종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고향인 대구·경북 민심도 이 후보에게 마음을 열면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가 30% 벽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중요한 건 실천이다. 이 후보의 경우 아내에 자식까지 온정권에 탈탈 털린 탓에 "정치보복은 없다"는 메시지의 울림이 크지 않다. 그렇다고 불법까지 덮어줄 수는 없다. 법 테두리 안에서 죄를 철저히 묻되 반대편과는 늘 소통하며 경제를 일으켜 세우라는 데 민심이 모아져 있다. 정조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다. 정조가 유독 돋보이는 것은 그가 잘해서라기 보다 다른 조선 왕들이 너무나도 무능하고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 후보든 누구든 집권해서 국력과 국민 수준,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만 한다면 정조만큼 높은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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