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하늘을 가르며 번져 나간 빛의 파문이 250년의 시간을 건너 한국에 도착했다.   풍경을 단순한 배경에서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화가인 ‘터너’의 거장 회고전을 넘어, 전통을 넘어서는 도전정신이 어떻게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를 되묻는 전시가 열린다.인상주의의 문을 미리 열어젖힌 선구자, 그리고 ‘빛의 화가’로 불리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그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가 우양미술관에서 열린다.우양미술관은 이달 17일부터 2026년 5월 25일까지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The Whitworth)과 공동으로 터너 개인전 ‘Turner: In Light and Shad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터너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국내 최초로 터너의 원화가 포함된 전시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며 그의 예술 세계를 회화와 판화라는 두 축을 통해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이다.회화와 판화 등 총 86점의 작품을 통해 터너가 평생 탐구한 빛과 명암, 그리고 매체 간 실험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이번 전시는 단순한 ‘거장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풍경화가 역사화나 종교화에 비해 하위 장르로 여겨지던 시대, 터너는 풍경을 통해 인간과 자연, 시간과 역사의 관계를 사유했다. 그는 색채를 쌓아 올리는 대신 빛과 명암을 해체했고 회화의 완결성보다 과정과 실험을 중시했다.    우양미술관 측은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실험적 현대미술가에게 수여되는 ‘터너 프라이즈’의 정신적 기원이기도 하다. 이는 우양미술관이 재개관 이후 지속해온 동시대 미술의 실험성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며 이번 전시의 이미를 짚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터너 예술의 핵심이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터너의 판화 연작 ‘리베르 스투디오룸(Liber Studiorum)’에 초점을 맞춘다. ‘연구의 서(書)’라는 뜻을 지닌 이 연작은 터너가 명성의 절정에 있던 1807년부터 1819년까지 총 14회에 걸쳐 출판한 풍경 판화 시리즈로 풍경 판화를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격상시키려는 그의 야심찬 기획이었다.휘트워스 미술관이 소장한 ‘리베르 스투디오룸’ 전 작품 71점이 한자리에 공개되는 것은 1922년 이후 100여 년만이다. 여기에 수채화와 유화 원화가 나란히 배치되며 터너 특유의 색채와 대기 표현이 판화라는 매체 속에서 어떻게 선과 명암, 여백으로 변주되는지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것도 관람의 포인트다. 터너 예술의 핵심을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드문 기회로 보인다. 전시는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1부 ‘판화가이자 출판인으로서의 터너’에서는 풍경화가 변방에 머물던 시대, 메조틴트 기법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판화를 체계화한 터너의 실험 정신을 조명한다. 그는 “판화는 선이 색채의 언어가 되도록 그림을 번역하는 작업”이라 정의하며 판화를 교육과 연구의 도구이자 독립된 예술로 끌어올렸다.2부 ‘터너와 함께한 판화가들’에서는 약 12명의 판화가와 협업하며 직접 감독하고 지도한 과정이 소개된다. 시험쇄에 남은 터너의 자필 지시는 그의 집요한 완성도와 판화가들과의 긴장감 있는 협업 관계를 생생히 전한다. 판화가 토머스 고프 럽턴의 회고처럼, 이 작업은 판화가들을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예술가의 반열로 끌어올린 계기이기도 했다. 3부 ‘리베르 스투디오룸의 재구상’에서는 휘트워스 미술관이 자랑하는 방대한 터너 수채화 컬렉션과 판화를 병치해 선보인다. “터너는 색이 아니라 빛과 명암을 먼저 고려한다”는 존 러스킨의 평처럼 수채화·유화·판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터너 예술 안에서 유기적으로 순환한다. 미완성 회화 속에 판화 구성이 차용된 사례는 이러한 매체 간 실험을 극적으로 보여준다.우양미술관은 재개관 이후 실험성과 동시대성을 중시해온 방향성과 맞물려 ‘터너 프라이즈’의 이름이 상징하는 문제의식을 이 전시를 통해 다시 환기한다. 주한 영국대사관의 후원으로 성사된 이번 전시는 한·영 문화교류의 의미 또한 깊다.전시와 연계해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도 풍성하게 마련된다. 터너의 빛을 모티프로 한 램프 만들기, 판화 제작 체험, 21세기 풍경 그리기, 미니 갤러리 구성, 미술사조를 따라 걷는 프로그램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빛을 해체하고, 명암으로 세계를 다시 조립한 화가 터너의 실험은 19세기에 머물지 않았다. ‘Turner: In Light and Shade’전은 터너 탄생 이후 250년이 지난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묻는다. 회화란 무엇인가, 풍경은 어떻게 사유가 되는가, 그리고 빛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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