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산수화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수묵담채 실경 산수화를 중심으로 꾸준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화 작가 박병숙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경주예술의전당 '2025 공유 앤솔로지' 전시로 알천미술관 갤러리 달에서 박병숙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 ‘자연의 품에서’가 이달 28일까지 열린다. 박 작가는 유행이나 기교에 앞서 먹과 여백이 지닌 힘을 중시하는 담백한 화풍을 구축해 왔다. 수묵을 기조로 한 실경 산수화들로 채워진 이번 전시에서도 화려한 기교나 파격 대신, 작가가 평생에 걸쳐 다져 온 전통 회화의 공력과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국전 수상작 세 점이 나란히 전시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형 화면에는 눈 덮인 산길과 계곡, 적요하고 서정적인 정자,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산하의 숨결이 화면마다 고요히 흐른다. ‘자연의 품에서’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의 그림은 관람자를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 놓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에 익숙한 시대에 박병숙의 산수는 천천히 보고 오래 머무는 경험을 제안한다. 작품들은 번잡한 해석 대신 다만, 관람자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심신을 천천히 이완시키며 무장해제 시킨다. 이번 전시의 중심은 ‘실경 산수화’로 실재하는 누각과 정자, 명승지의 풍경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다. 내연산 은폭포, 해인사 홍류동 계곡, 합천 황계폭포, 경주 삼릉 솔숲, 계림 설경 등 우리의 산하가 작가의 시선으로 재구성돼 있다.박병숙이 말하는 실경 산수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실경 산수화는 실제 눈앞의 경치를 그리되, 작가의 정신세계와 개성이 합쳐져야 한다. 화가는 충만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감상자의 심기를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연을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동양적 자연관이 그의 화면 곳곳에 배어 있는 이유다.그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우리 산하를 직접 그리며 한국적 산수화의 기틀을 마련한 점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중국 화풍의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의 산수’를 그린 겸재의 정신은 작가 박병숙이 오늘날까지 실경 산수화를 고집하는 이유기도 하다.박병숙의 작품은 대부분 한지에 수묵담채로 완성된다. 그는 한지의 물성과 보존성에 깊은 신뢰를 보낸다. “한지는 천 년 이상 보존이 가능한 종이다” 느리고 오래가는 재료 위에, 작가는 서두르지 않는 시간을 쌓아 올린다.먹의 농담과 여백, 담채의 절제된 색감은 그의 화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대자색, 군청, 황토 등은 자연의 숨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쓰인다. 바위의 질감은 부벽준과 점묘법으로, 물의 깊이는 군청과 먹의 혼합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 모든 기법은 전면에 드러나기보다는 풍경 속으로 은밀하게 스며든다. “저는 수묵담채를 주로 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기교에 치중하기보다는 기본적인 수묵을 기조로 아주 담백하게 구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전통 산수화는 오랜 시간 공력을 쌓아야 빛을 보는 작업”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단기간에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오랜 공력의 축적으로 보인다. 박병숙 작가의 실경 산수화는 그의 삶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어린 시절을 합천 두메산골에서 보냈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자고 나면 온 산하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너무 고요하고 차분해서 쓸쓸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작가에게 설경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기억이고 정서이며 회화적 출발점이었다.그가 국전에서 네 차례 입상한 작품들 또한 모두 설경 산수화였다. 2019년 제3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작 ‘설경2’를 비롯해 ‘첫눈’, ‘용계정의 겨울’ 등은 이번 전시에도 출품했다. 박 작가는 “내가 자란 환경이 눈에 선하다”며 “전통 산수와 설경은 내가 계속 걷고 싶은 길”이라고 말했다.특히 작품 ‘첫눈’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싸락눈처럼 보슬보슬 내려 쌓인 눈의 색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여백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눈이 내린 효과를 만들었다. 터치를 많이 하기보다는 주변을 표현해 오히려 눈과 눈길의 중심이 튀어나오도록 했다” 이는 그의 회화 전반을 관통하는 태도기도 하다. 덜 그려 더 보여주는 방식, 바로 수묵의 미학이다. 오늘날 한국화는 재료와 기법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박병숙은 유행과 거리를 둔다. 그는 “회화의 본질, 한국화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말한다. 시류와 타협하지 않고 전통 회화를 올곧게 이어가는 그의 작가 정신과 태도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동양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여겨지며 자연을 대하는 태도, 붓을 드는 마음가짐, 시간을 견디는 자세로 그는 작품에서 말없이 보여준다.박병숙의 산수는 과거를 향한 회귀를 벗어나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느림과 절제,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조용한 제안으로 보이며 그의 작품에서 관람자는 저마다의 기억과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박병숙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 부문에서 네 차례 입선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2020년 청송야송미술대전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경북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포항불빛미술대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참여하며 실경 산수화 분야에서 꾸준한 성과를 거뒀다.국내 활동과 함께 한·일 국제미술교류전(2024), 한·중 예술인 교류전과 경북–중국 하남성 국제미술교류전(2025) 등을 통해 국제 교류전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또 청량산박물관 개관기념 초대기획전, 경주예총예술제 등 지역 미술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서울장덕한방병원, 청송야송미술관, 합천군청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으며 현재 한국미술협회와 경주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신라미술대전·경북미술대전·야송미술대전 초대작가로 선정돼 있다. 한국화묵연회장과 무명회장을 맡아 전통 한국화의 계승과 후배 작가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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