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 고대미술 연구에 힘써온 미술사학의 거장 강우방이 방대한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신간 ‘인류의 조형예술 읽기: 문양에서 조형언어로(무본당)’를 펴냈다. 저자는 ‘조형언어’와 ‘채색분석’이라는 예술을 읽는 방법론으로 조형예술에 담긴 작품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되살려내며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감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열어가고 있다.760쪽에 달하는 이번 신간은 인류가 남긴 예술 작품을 ‘조형언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읽어내며 미술 감상과 해석의 지평을 근본적으로 확장한다.저자는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한국의 민화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예술 전반 즉 회화, 조각, 건축, 문양, 금속공예, 복식 등을 관통하며 작품에 새겨진 문양이 단순한 기호나 장식이 아니라 생명과 생성의 원리를 담은 ‘조형 언어’임을 밝힌다. 저자는 이 조형언어를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보주’라는 네 가지 형태로 제시한다. 이 네 가지 조형언어가 작품에서 다양한 리듬으로 표현되며 예술을 생성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저자는 이를 직접 그리고 채색하는 ‘채색분석’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그 양상을 보여준다.연대나 작가 중심의 기존 미술사 서술에서 벗어나 작품 내부에서 형상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강우방은 자신이 개발한 독창적 방법론인 ‘채색분석’을 활용해 1030컷의 올컬러 도판으로 조형의 흐름과 구조를 실증적으로 제시한다.가령 통일신라시대 기와인 녹유 용면와(龍面瓦) 채색분석은 용의 조형언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와에 새겨진 ‘얼굴’은 귀신이나 도깨비가 아니라 조형언어(제1, 제2, 제3영기싹, 보주)로 구성된 영기문이며, 특히 용의 입 속 둥근 보주와 조형언어는 조형을 생성하는 힘으로 자리한다.책은 전체 6부 58장으로 구성돼 ‘예술은 왜 이러한 문양을 반복해 왔을까?’ ‘문양은 단지 장식일 뿐일까?’ ‘인류는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형상을 남겼을까?’ ‘우리가 그 형상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며 예술에 대한 지평을 넓히면서 조형언어의 기원과 변주, 보편성을 폭넓게 다룬다. 고구려 벽화와 불상, 조선의 책가도, 서양의 건축과 종교 조형물,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사례들은 예술이 일관되게 생명성을 형상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용’과 ‘보주’는 조형을 생성하는 핵심 형상으로 새롭게 해석되며 한국 전통미술에 대한 이해를 한층 깊게 한다.저자 강우방은 “예술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읽고 발견하는 생생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조형예술 읽기’는 예술 작품을 과거의 유물로 고정하지 않고 지금 이순간에도 생성 중인 살아 있는 형상으로 되살려낸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 형태의 근본을 다시 묻는 이 책은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묵직한 문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