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나쁜 기운을 막고 길한 기운을 불러들이는 벽사와 길상의 상징인 세화(歲畵)를 문 앞에 붙이며 한 해의 평안과 복을 기원했던 선조들의 마음은 오늘날에도 ‘민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라 ‘처용 문배’로 시작된 민화의 발상지인 경주에서 한국 민화의 뿌리와 미래를 동시에 비추고 있는 특별한 교류전이 열리고 있다.경주가 한국 전통 민화의 기원을 품은 도시이자 동시대 민화 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경주민화협회(회장 한유진)가 마련했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띠해를 앞두고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서울 민화 작가들과의 교류전 ‘세화, 처용의 문배에서 시작되다’로 경주 큐신라 갤러리에서 23일부터 내년 2월 22일까지 진행된다. 
 
신라의 세시풍속에서 출발한 ‘처용문배’를 현대 민화로 소환한 이번 전시는 신라의 세화 전통을 오늘의 민화 언어로 풀어낸다.전시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8호 민화장 보유자 정귀자 선생과 한유진 회장을 비롯, 서울과 경주에서 활동 중인 작가 50여 명이 참여해 2026년 ‘붉은 말띠해’를 맞아 액운을 막고 안녕을 기원하는 세화 총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통 민화의 격조를 잇는 작품부터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창작 민화까지 민화가 지닌 서사와 미학의 폭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민화의 발상지를 논할 때 경주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화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문배(門排)’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가 바로 통일신라 시대의 처용문배기 때문이다. 처용의 얼굴이나 형상을 그린 처용문배는 신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던 세화였다.
‘삼국유사-처용랑 망해사’에는 “백성들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 잡귀를 물리치고 상서로움을 맞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처용문배는 특정 계층의 장식화가 아닌, 백성들이 향유하고 소비했던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의 정의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로써 처용문배는 한국 민화사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교류전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경주가 민화의 발상지'임을 전시 기획 자체로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이다.한유진 경주민화협회 회장은 “경주는 정월 초하루마다 처용의 화상을 문에 붙이며 한 해의 안녕을 기원했던 세화의 본향”이라며 “민화의 시작이 바로 이곳 경주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특히 이번 전시는 서울의 작가들이 민화의 뿌리를 찾아 경주 작가들과의 교류전을 가진다는 면에서 획기적이다. 한유진 회장은 “서울 작가들과 경주 작가들이 동등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는 이번 전시는 경주가 유적의 도시를 넘어 K-컬처와 민화 예술의 허브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전시장에는 가족의 안녕과 복을 비는 전통 민화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호랑이와 까치, 용과 말 등 길상적 상징이 담긴 그림들은 세화 본래의 기능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동시에 젊은 감각의 창작 민화도 눈길을 끈다. 최근 글로벌 인기를 끌고 있는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속 캐릭터를 민화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민화가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진행형 예술임을 보여준다.전시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을 구매하는 관람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민화가 감상의 영역을 넘어 일상 속 예술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 말미에는 학술 강연도 마련된다.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현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 위원장)이 ‘민속학으로 바라보는 붉은 말띠해’를 주제로 강연에 나서 우리 민속 속 말의 상징성과 세화의 의미를 풀어내며 경주 민화 교류전의 깊이를 더한다.2026년 병오년 새해, ‘세화, 처용의 문배에서 시작되다’전을 찾는다면 경주가 민화의 발상지임을 재확인하고 처용의 가호처럼 민화의 새 기운이 경주에서 다시 역동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