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의 깊은 울림 위에 마음의 결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민화 화면들이 경주 고청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박정희 민화(옻칠) 작가의 초대 개인전 ‘여유’가 경주고청기념관 내 고청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이어지며 작가와의 만남은 23일 오후 7시에 마련된다.이번 전시에서 박 작가는 민화를 모티프로 삼아 옻칠과 자개, 계란껍질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일월오봉도’ 같은 전통 민화와 다양한 꽃 등을 화려하게 변주시킨 창작 민화 위에 수만 번의 손길과 반복된 칠과 건조, 연마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화면들은 옻칠 특유의 깊이와 광택, 절제된 여백의 미학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일반적으로 옻칠이라 하면 나전칠기 등 전통 공예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박정희 작가는 옻칠이라는 전통 재료를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확장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옻칠은 흑색이나 황토색에 머무르지 않는다. 덧칠과 붙이기, 입체적 표현까지 동서양 회화 기법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색감과 질감을 구현한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일컫는 자연 재료인 옻칠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미세한 환경 변화에도 색과 표면이 달라진다. 원하는 색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수 차례의 건조와 인내가 요구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까다로운 재료다.그렇기에, 박정희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자신의 작업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옻판의 깊은 울림 위에 마음의 결을 쌓듯 칠하고 말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겹겹이 쌓아 올린 옻의 층위는 인내와 기다림이 빚어낸 시간의 기록”이라면서 “기다림과 여유, 비워냄을 통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적정’의 순간이야말로 내가 옻칠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개의 활용이다. 반짝이는 자개의 형상은 관람객 저마다의 ‘빛나는 날들’을 떠올리게 한다. 도료 속에 드러나거나 묻혀 있는 자개의 조각들은 빛의 굴절에 따라 각기 다른 반짝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우박정희 민화 작가 박정희 민화리 삶의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미감과 현대적 조형미가 어우러진 화면은 정적이면서도 자유롭다. 사유적 깊이를 지닌 화면 구성과 기품 어린 색의 조화는 수행자의 자세로 삶과 작업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를 닮아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수많은 미술 재료 중에서도 까다롭기로 손꼽히는 옻칠을 고집하는 이유가 엿보인다.   박정희 작가는 한국민화국제교류협회와 한국민화협회, 경주민화협회 회원으로, 경주민화협회 제5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민화센터 이사로 활동 중이다. 통도사 서운암 옻밭아카데미 회원이자 서운암 전통민화 강사, 한서미술대전 초대 작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 ‘삼선방(대표 김진배)’의 안주인이기도 한 그는 전통 옻칠 나전 기법을 현대 회화에 접목하는 작업에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옻칠의 무한한 표현력과 다채로운 색과 결로 완성된 이번 전시는 옛것에만 머무르지 않는 전통의 현재성을 조용하게 방증한다. 새해, 고청갤러리를 찾아 깊은 침잠 끝에 마주하는 ‘여유’의 순간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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