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하고 고독한 눈동자 가운데, 여전히 견뎌온 시간에 대해 애정을 지니면서 자세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탐구하는 듯한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작가 최윤정(46)은.그의 성장기, 이사 트럭이 멈추면 집보다 먼저 풀린 것은 책 상자였다. 전입신고만 쉰 곳이 넘고 초등학교만 스무 곳 넘게 옮긴 삶의 풍경은 불안했고 가난했으며 임시적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이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작가의 ‘책’이 있었다.여덟 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 믿었던 그는 2025년과 올해 벽두까지 주요 문학상과 유력 신춘문예를 연이어 거머쥐며 지역문단에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한 해에만 3관왕’을 일궈내며 문학계를 긴장하게 했다.
최윤정 작가는 시와 수필, 소설을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201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흉터’로 등단하며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32세로 최연소 당선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등단 이후 그는 수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제3회 천강문학상 수필 우수상을 비롯해, 2012년 울산공업센터지정기념 공모전에서는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장르 확장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2014년에는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해 신인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시는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2025년 제15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작 ‘횡혈식석실묘’를 통해 인간사의 생멸과 시간을 사유하는 시 세계를 선보였고 2025년 부산일보 해양문학공모전에서는 시 ‘갯벌 도서관’으로 최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이어 2026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시 ‘끈끈한 가족’이 당선되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끈끈한 가족’은 비교적 그의 시 세계를 잘 보여준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대해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 한다”는 등의 평을 내놓았다. 이 시는 작가가 경험을 원천으로, 창작을 절묘하게 교차시킨 시다.‘엄마가 밥통 속 환한 빛을 바닥까지 긁어 담아요 우리는 설익은 십자가들을 골라내어 그릇 옆에 모아두었죠 기도를 열심히 하면 울기도 하잖아요 집구석마다 곰팡이가 단란하게 피어 있는 오늘 밤이 꼭 그런 기분이죠 누군가 밟고 지나간 반지하의 하늘이 창으로 밀려들어요 우리는 각자의 벽에 들러붙어 싹싹 눈이 부신 쪽으로 밤새 빌었어요' -시 ‘끈끈한 가족’ 중에서.
“제 시는 ‘거칠고 광폭한 사유들을 쓰다듬고 달래려' 노력합니다. 그리 난해하지 않아요. 집중해서 읽으면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대신 감정을 건드리길 바라죠”
최윤정 작가는 현재 경주에서 생활하며 아낌없는 외조로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남편 덕에 네 아이를 키우는 한편, 식물 카페 ‘아단소니’를 운영하고 그 카페에서 글쓰기 창작반을 지도하고 있다. 일상적 노동과 양육, 지독한 독서와 창작을 병행하는 생활 속에서 시와 소설, 수필에 대한 '행복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는다. 장르의 경계는 넘나들되 완성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요구하며 ‘버릴 작품 하나 없는 글’을 목표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그의 문학은 결핍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잦은 이사로 비유되는 가난은 성장기의 그에겐 불행이었지만 동시에 독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세계명작전집 70권을 모두 읽고 입학했다. 그 독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엄청난 독서량과 지난한 삶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 세계로 스며들었다.“태어나 보니 이미 존재해 거부할 수 없었던 환경들, 그리 멍청하지 않았던 제 자신…," 직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오래도록 작가의 의식 영역에 축적됐다. 그는 특히 부모의 삶을 오래 들여다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견뎌온 인생을 애정으로, 아주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어요. 작품의 원천이 되는 것 같아요”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던 그는, 뜻밖에도 수필로 가장 먼저 문단에 들어섰다. 경주문예대학에서 수필을 접한 뒤, 201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흉터’로 당선됐다. 통상 7년 이상 걸린다는 등단을 단숨에 통과해버린 셈이었다.
그는 수필가라는 호칭에 머무르지 않았다. “수필은 평생 가져가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시와 소설에 더 골몰하고 있어요” 김유정 문학상을 비롯해 시 부문에서 연이어 굵직한 수상을 했음에도 그는 아직 시집을 내지 않았다. 물론 시집을 내라는 요청도 많았다. “시집을 내기에는 아직 부끄러워요” 그의 겸손은 거의 고집에 가깝다. “이 정도 수상으로 시집을 내고 ‘시인입니다’라고 말하기엔 자격 미달 같아요. ‘저 시 썼습니다’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이력을 쌓은 뒤에 시집을 내고 싶어요” 그런 작가의 목표는 분명하다. ‘버릴 작품 하나 없는 시들로만 모으는 것, 타작이 없는 시집을 내는 것’이다. 최윤정 작가는 자타공인 독서광이다. 자기계발서 이외엔 시집, 소설, 르포, 고전, 논픽션, 취미서까지 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1년에 예스24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 회원을 유지할 정도다. “남편이 그래요. 상금 타는 건 모두 당신 책값이라고요(웃음)”그런 작가의 글쓰기 방식은 철저하다. “쓰면서 바로 퇴고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며칠 뒤, ‘다른 최윤정’이 이 시를 처음 본 것처럼 다시 읽어요. 저는 이걸 ‘뇌를 갈아 끼운다’고 말해요. 제 글을 객관화하는 노력의 일환이죠”
주요 문학상과 신춘문예를 연이어 거머쥐며 문학에 대한 인식은 더욱 견고해졌고 '최윤정 식 글쓰기'로 명징해졌지만 최 작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허기지다. 계속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쓰려고 노력라는 단계”라고 말한다. 시도, 소설도 아직 그의 길 위에 있는 것이다.최 작가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문학의 지향점은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작 ‘횡혈식석실묘’의 수상 소감에 오롯이 담겨 있다.“나는 인간사 해탈하고 우주를 노래하는 시인이 될 거라고 농담처럼 진담을 말하기도 했다. 떡잎에 깍지를 머리핀처럼 꽂은 애호박 모종을 옮겨 심으며 땅속에 뉜 것들 모두 물기를 머금고 통통하게 부풀어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쓴 시들도 반딧불이 되어 스스로 빛을 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여덟 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 믿었던 내 꿈은 오래 빚어온 덕분에 단단하고 빛나고 아주 동그래서 멍든 무릎으로도 거침없이 잘 굴러갔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쓰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