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상그럽기 그지없는’에는 정작 상그럽지 않은, 푸근한 춘설 같은 시어들이 빼곡하다. 그저 그런 일상의 장면들 속에는 오래 곰삭아 무르익은 질박한 해학과 성실히 관찰한 데서 발견하는 성찰이 배어 있다.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성규 시인이 최근 시인동네 ‘시인선’ 261번째 시집으로 ‘상그럽기 그지없는’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총 4부, 60편의 시를 통해 견고한 일상의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인의 의도가 분명하게 담겼다. 1부 ‘입춘 아침’으로 문을 열어 4부 ‘입동 저녁’으로 닫히는 구성은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 배치된 1년짜리 일상의 기록으로 보인다. 또 시인 고영의 해설 ‘눈부처를 좇는 일상의 기록’을 통해 박성규 시인의 시 세계를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조명한다.이어 ‘이젠 봄이라 하자’, ‘장마가 설치는 저녁’, ‘나락’, ‘고욤나무’ 등 계절을 직접 드러내거나 비유하는 작품들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이 기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래도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인이 있었으니 연이 있다’는 삶에 대한 신뢰다.표제작 ‘상그럽기 그지없는’은 경상도 방언 ‘상그럽다’를 통해 시집의 지향을 정확히 압축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품은 시 세계를 보여준다.
 
'겨울 초입/ 금방 비가 올 것 같고/ 금방 눈이 내릴 것 같다//...무도 뽑아 저장해야 하고/ 질금도 담가야 하고/ 메주도 쒀야 하고/ 오그락지도 만들어야 하고/ 김장도 해야 하는데/ 바람조차도/ 마구잡이로 불어 재낀다// 짧은 하루/ 상그러운 가슴만 끌어안고/ 날씨만 탓한다//' -시 '상그럽기 그지없는' 중에서. 
박성규 시인의 이번 시들은 해학적인 듯하지만 그 웃음의 온도는 오래 남는다. 그의 시들에서는 일상의 결을 따라 스며든 삶의 태도와 시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시인은 처음 맞닥뜨리는 사건들과 내면의 갈등을 일상의 기록으로 확장하며 일상적 자아를 초월하는 시 의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 몇 편에서 그의 맛깔스런 시어들을 개략적으로 만나 본다면, 먼저 시 ‘맞짱에 대하여’에서는 일상 속 우스꽝스러운 풍경을 통해 삶의 긴장을 묘한 대치로 구사해 능청스럽게 풀어냈다. 
 
‘오늘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다가/ 노파와 운전사 간/ 맞짱의 진수를 구경했다// 잔돈이 없어서/ 오만 원짜리 지폐를/ 요금함에 넣고는/ 잔돈을 거슬러 달라하니// 오백 원짜리 동전 96개와/ 백 원짜리 동전 3개를/ 우르르 쏟아놓고선/ 꺼내 가라네//’시 ‘꽈배기’에서는 하루의 끝에 놓인 시인의 모습이 소박하게 그려진다. ‘이른 저녁을 먹으며 반주로 두꺼비 한 병을 잡았다. 취기가 올라도 시 한 줄은 읽고 자야지 하고 시집을 펼쳤지만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잠이 들어 들었다.’ 시를 읽지 못한 채 잠에 드는 순간마저 시가 되는, 박성규 시 특유의 생활 밀착형 서정이 돋보인다.시 ‘제비집 2’는 자연과 삶, 그리고 인간적인 계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잔잔한 웃음과 여운을 남긴다. ‘작년에 살다 간 제비 부부/ 봄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 넓은 집에서 편안하게 사는 모습 뿌듯하지만/ 전세금은 언제쯤 주려나// …// 제비가 떠나도/ 남을 것은/ 집/ 본전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동시에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는 능청이 인상적이다.시 ‘죽어줘야겠어’에서는 불살생의 윤리와 일상의 단면이 유머러스하게 충돌한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단군님/ 참을 만큼 참았거든요// 나도 모르겠심더/ 그래도 불살생이 싫은 터라/ …// 준비해 둔 파리채를 들고/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주자고/ 뜸을 들이고선……’ 이 시는 웃음 끝에 ‘눈부처’를 좇는 시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이번 시집에서 박 시인은 어떤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따라붙는 또 다른 선택의 ‘갈등’을 현미경처럼, 때로는 초점이 맞지 않는 돋보기를 들이대듯 확대하거나 즐겁게 왜곡해 보여준다. 자연과 세계와의 대립 앞에서 우직하게 맞서기보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는 삶의 태도가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이룬다.박 시인에게 ‘능청’은 결함을 극복한 대응 방식이며 경험에서 비롯된 불안마저 넘어선 삶의 자세다. 진정한 앎이란 스스로 깨우치는 것임을 이번 시집은 조용히 증명한다. 박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늘그막에 삼재가 닥쳤는지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나마 내게 시가 남아 있어 견딜 수 있었다”며 다시 붙잡은 시가 이번 시집에 더욱 깊은 울림을 더했던 배경을 담박하게 전한다. 해설을 맡은 고영 시인은 “박성규 시인의 이후가 한 걸음 더 부처와 같고 또 한 걸음 더 세상의 ‘동행’들과 가까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박성규 시인은 2003년 ‘한맥문학’, 2004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 ‘꽃아’, ‘멍청한 뉴스’, ‘오래된 곁눈질’, ‘어떤 실험’, ‘이제 반딧불을 밝혀야겠다’, ‘텃밭을 건너온 말씀’, ‘내일 아침 해가 뜨거나 말거나’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펜, 대구문인협회, 경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박성규의 새 시집 ‘상그럽기 그지없는’은 일상의 균열 속에서 길어 올린 능청과 해학의 언어로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삶이 신산할때마다 곁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며 응시하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