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질이란 내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알아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서로 어울리는 짝을 말하며 진실한 벗이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학문이나 사상을 비롯 추구하는 도(道)가 같은 영질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삶의 여정이 오죽 풍족할까.  삼국유사 의상전교(義湘傳敎)편에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종남산의 지엄을 만나는 장면에서 지엄이 의상을 영질로 표현하고 있다.  영질은 장자의 서무귀편에 언급된 것으로 영이라는 곳에 사는 장석이란 사람은 도끼를 휘둘러 상대방 코끝의 진흙만을 떼어내는 기술을 발휘할 정도의 장인이었으나 그 짝인 질이 죽고 나서는 그런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장자는 친구인 혜자의 무덤을 보면서 이제 영질이 없어 누구와 의논할까라며 탄식했다.  장자에게 혜자의 존재는 진정한 벗이요 동반자 였음을 알 수 있다. 공자 역시 논어의 학이편에서 유붕자원방래하니 불역락호라고 했다. 먼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이때의 벗이란 학문을 좋아하고 뜻과 추구하는 도가 같은 친구로 오늘날의 용어로 코드가 맞는 인물을 의미한다.  공자는 위령공편에서 도부동 불상위모(道不同 不相爲謀)라며 추구하는 뜻이 같지 않으면 함께 큰일을 도모하지 않는다고 했다. 벗이나 동반자나 뜻이 맞지 않으면 친구가 되지 않음을 익히 설파하고 있다.  공자에게 있어 영질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안회라 할 수 있다. 제자인 안회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 했음을 볼때 안회에 대한 공자의 믿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영질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서로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 화엄종의 개조인 지엄과 제자인 유학승 의상 역시 영질이라 할 만큼 단박에 믿음과 신뢰로 어우러져 둘은 추구하는 도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유사에는 원효와 대안법사의 관계를 지음(知音)이라고 해 영질에 이어 지음도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를 뜻한다.  춘추전국시대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백아가 연주한 거문고 소리를 이해한 자는 나무꾼인 종자기였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내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지음이 없음을 탄식하고는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열자는 전한다.  원효가 금강삼매경소를 지으면서 대안이 원효의 뜻에 맞게 순서를 바로 잡았다는 이야기에서 원효와 대안의 관계는 지음이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않다. 오늘날 우리는 신뢰가 아닌 각자의 뜻과 방식으로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뜻이 맞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대동소이하다면 누군가의 영질이 되고 지음이 될 수 있다. 친구와의 우정을 비롯 연인관계 스승과 제자 인생의 멘토 등 신뢰와 믿음으로 사는 세상이 행복한 사회다.   누군가가 또 누구의 영질이 되고 지음이 되는 신뢰의 관계가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내마음이 네마음. 네마음이 내마음. 영질의 관계는 서로에게 삶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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