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아침을 열어온 포스코의 굴뚝은 9일에도 꼿꼿이 서 있었다. 
 
철강도시 포항을 상징하는 거대한 생산시설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하지만 이날 포항 산업현장에는 58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낯선 풍경이 시작됐다. 포스코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사측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48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포스코가 1968년 창사 이후 파업에 들어간 것은 58년 만에 처음이다. ‘무분규’라는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사측은 전체 공정의 70%에 해당하는 핵심 생산공정에 협정근로 단체협약에 따른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당장 일부 핵심 공정의 생산 차질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포항이 긴장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파업이 48시간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다. 노조는 교섭에 진전이 없을 경우 파업 규모와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이번 노사 갈등의 출발점은 임금이다. 포스코노조는 기본급 7.1% 인상과 격려금 600%, 우리사주 50주, 명절상여금 200% 지급 등을 요구했다. 사측은 기본급 2.0% 인상과 목표달성 격려금 350만원, 지역사랑상품권 50만원 등을 제시했다. 양측의 입장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노조 입장에서는 수년간 회사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온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사측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중국발 저가 철강 공세와 글로벌 보호무역 확산, 고유가·고환율·고금리 등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한 상황에서 대규모 요구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노조 요구안은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모두 합할 경우 약 1조4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의 수익성도 과거와 같지 않다. 2021년 6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이후 영업이익은 하락세를 보였다. 2024년 1조4000억원까지 떨어진 영업이익은 지난해 1조8000억원으로 다소 회복됐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약 4800억원까지 내려갔다.포항경제에서 포스코를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철강산업 생태계가 형성됐고, 수많은 협력업체와 연관기업, 근로자와 가족, 지역 상권이 포스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포항시가 노조의 부분파업이 시작된 이날 긴급 경제단체대책회의를 열고 지역경제 영향을 점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포스코, 포항상공회의소, 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금융·경제 유관기관, 소상공인·전통시장 관계자, 포스코 협력업체 등이 한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가장 큰 걱정은 파업의 장기화다. 생산과 출하가 줄면 협력업체의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 근로자 소득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면 그 여파는 지역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포항경제가 이미 마냥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철강산업 경쟁력 약화와 경기 침체, 인구 감소, 소비 위축 등이 겹치면서 지역경제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이런 상황에서 포스코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 충격은 포스코 울타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협력업체가 흔들리고 산업단지의 생산활동이 위축되며, 결국 식당과 숙박업소, 소매점 등 지역 상권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이번 사태가 포항에 던지는 또 다른 과제도 있다. 포항경제가 특정 대기업의 경영 상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포스코가 지역경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포스코가 흔들릴 때 포항 전체가 함께 흔들리는 구조라면 지역경제의 체질 역시 바꿔야 한다. 철강산업 고도화와 함께 이차전지·바이오·수소·소재·부품·장비 등 신성장산업을 육성하고, 지역 기업이 포스코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중소 협력업체의 기술개발과 금융지원, 판로 확대도 필요하다. 지역 상권 역시 산업단지 근로자 소비에만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 관광과 문화, 청년 창업, 체류형 콘텐츠 등 새로운 소비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파업을 단순한 노사 간 임금 갈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포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가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포스코는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다. 회사에게 노동자는 생산과 경쟁력을 함께 만들어가는 핵심 구성원이다. 
 
포스코 역시 노동자의 요구를 단순한 비용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노동자 역시 현재 철강산업이 처한 어려운 현실과 글로벌 경쟁환경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한발씩 물러서야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과 복지 개선을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연계하고, 회사의 경영성과와 미래 투자계획을 노동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도 필요하다. 
 
포항시와 경북도 역시 노사 문제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장기화에 따른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고 협력업체와 소상공인을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포스코의 첫 파업은 단순히 48시간의 생산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58년 동안 이어온 포스코의 노사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이자, 포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이다.지금 포항에 필요한 것은 ‘노조의 승리’도 ‘회사의 승리’도 아니다. 
 
포스코가 살아야 포항이 살고, 포항이 살아야 포스코도 지속가능하다. 노사가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포항의 산업 생태계 전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노사협력 모델을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금과 복지를 둘러싼 갈등을 넘어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자의 삶, 그리고 지역경제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