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농지전수조사에 착수하자 농촌 현실을 외면한 채 경자유전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지난달 28일 시행된 개정 농지법은 농지 처분 명령을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변경했다. 종전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처분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나 개정법은 이를 의무화했다. 특히 정당한 사유 없이 농사를 짓지 않거나 불법으로 임대한 농지 소유자에 대해 처분 의무를 통지하고, 처분 의무 통지를 받으면 원칙적으로 1년 안에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 규정이 제각각인 농지 보유 사유와 고령화·농촌 인력 부족으로 경작이 어려운 현실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농촌 현장에서는 개정법에 대한 우려가 크다. 도시로 나간 자녀에게 농지를 증여한 농민이 손을 보태주는 경우나, 나이가 많아 경작하지 못하는 경우 등 개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실경작하지 않는 농민의 농지를 빼앗아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그것이다.전북 남원에 농지를 소유한 양모(55)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농지를 증여받았는데, 형제들이 모두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탓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이웃에 농지를 임대하고 있다"면서 "개정된 법안대로라면 처분 명령 대상이 될 것이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까지 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지만, 대대로 3대 넘게 지켜온 집안 재산을 직접 농사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해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또 대리 경작을 하는 농민들도 자신의 협소한 농지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아 농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포시 하성면에 사는 한 농민은 "어차피 내 농사를 짓는 김에 옆 땅까지 빌려 농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내 땅만으로는 소득이 적기 때문에 이런 대리경작은 상당수 농민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 "자기 땅만으로 농사를 짓도록 한다면 실제 소농들은 수익이 줄어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개탄했다.개정법 시행으로 실경작하지 않는 농지 처분이 증가하면 지가 하락도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도 농민들을 힘들게 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rt.molit.go.kr)에 따르면 전수조사 착수(5월18일) 전후의 충북 청주 근교인 남일면의 '답'(논)의 ㎡당 가격은 약 12만7000∼14만6000원이었으나 현재는 약 9만2000원으로 28∼37% 떨어졌다. 같은 기간(약 4.5개월) 거래 건수도 34건에서 16건으로 절반 이상 크게 줄었다.전수조사의 물리적 한계와 조사 후 불명확한 지침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조사 기간이 짧고 인력이 부족한 탓에 조사율도 저조하다. 총 8만3000여필지를 대상으로 심증 조사를 하는 여주시의 경우 32명의 조사원을 채용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현재 조사율이 43%에 머물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이 많은 지자체의 상황은 이보다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경북 청송군에서도 최근 들어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농민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지침이 없어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자유전 원칙'이라는 법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적지 않다"며 "미경작 토지를 무작정 팔라고 할 경우 농촌지역이 활력을 잃을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