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寫眞)에 젊음을 바치고 사진에 나의 생을 건다. 사진은 나의 종교처럼 되어 신앙심으로 카메라를 잡는다." 194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1960년대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도윤 사진작가는 인생을 송두리채 사진에 바쳐온 포항의 원로 사진가다.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가 사진을 한 것에 대해 "사진과의 인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닿아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평생을 사진만 바라보고 카메라와 일생을 함께하고 있는 그의 사진사랑은 고교시절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부산의 친척집에서 학교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어깨 너머로 배운 사진기술이 결국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배우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의욕이 넘치던 시절, 사진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외도를 생각해보지 않았고, 오직 사진에만 미쳐 평생을 살아온 그의 사진 속에는 말 그대로 작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디 작가의 삶뿐이겠는가?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온 숱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가 발품을 팔면서 앵글에 담아낸 국내외 수많은 풍광들, 그리고 제 2의 고향으로 60여년을 살아온 포항의 지난 6, 70년대의 살아있는 역사가 그의 사진 속에는 온전히 살아있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순간,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뛰어다닌 것이 지나온 세월이다. 포항에 정착하여, 그가 사진을 배우고 그가 사진에 눈뜨기 시작할 무렵인 60년대, 포항에는 사진학과는 고사하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없어서 대구로, 서울로 뛰어다니며 스스로 길을 찾아 힘들게 배워야 했다. "당시 동아일보 사진 부장이자 평론가인 이명동 선생과 대구 매일신문사 사진 부장이었던 신형국 선생으로부터 힘들게 사진을 사사 받았습니다." 그렇게 사진가로의 삶을 살기 시작한 그는 '모든 유형의 인간을 찍자', 특히 '서민의 삶에 눈을 돌리자', 이것만이 사진인의 과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주변에서 그들의 삶과 생과 허례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포착하려고 노력해왔다. 때로는 형상만 쫓아가려고 했고 기법만 쫓아가려고 한 적도 있었다. 책에 나타나는 모양이나 색깔을 흉내내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란 걸 일찍 깨달았지요." 중앙동 상가 밀집 지역에 위치한 그의 사진관 '천년스튜디오'는 작업실 겸 아뜨리에로 사용되고 있다. 옛날에는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의 명성을 듣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해 놓은 앨범 숫자에 일단 놀라게 된다. 그리고 각종 위촉패와 상장, 걸려있는 작품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작가는 더 많은 작품들이 CD로 제작돼 있다고 한다. 그동안 카메라를 둘러메고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을지를 상상해 본다. 여기에 작업실을 두고 그는 훌쩍 떠나는 걸 좋아한다. 산이건 바다건, 사람사는 현장이건 어디든 가서 사람냄새, 자연의 냄새를 맡고 싶어한다. "사진도 한 곳에 계속 머물러 있으며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삶과 작품이 일치해야 하는데 열린 마음이 중요하지요." 남들은 좋은 차에 앉아 골프채를 닦고 고급 주점에서 양주를 마실 때 그는 사진을 찍으려 애섰다. 그렇게 사진에 대한 열의와 노력으로 괜찮은 작품들이 탄생할 즈음, 중앙일보 전국사진공모전에서 그는 금상을 수상한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이 후 여세를 몰아 프랑스 파리 국제사진전에서 작품 '돼지몰이'로 우수상을 받았고 뉴스 보도사진 최우수상, '농악'으로 아세아태평양 사진전 우수상, '탈'로 유네스코 사진전 우수상, '형상의 적' 전국사진 공모전 금상, 경북관광사진전 금상 등을 수상했다. 이 모두가 그의 사진예술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들이다. 또 '누드와 부채춤'이란 작품으로 세계사진전 2회 당선, 1975년 6월,1979년 5월, 1982년 7월 대한민국미술대전 각각 입선, 중앙일보 국제사진전 금상 등 국내외 공모전에서 300여회나 입선·입상을 하면서 사진가로서의 여정을 힘차게 달려왔다. 당시 지방에서는 국전이란 말조차 생소해 국전출품 방법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때에 그는 국전에 3회나 입상한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진예술의 흐름도 많이 바뀌었다. 영일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활행태도 바뀌었다. 형산강의 물줄기가 예전과 다르고 60년대의 초가집과 움막집은 모두 아파트로 바뀌었다. 갈대밭이었던 포항의 5개의 섬(송도, 죽도, 해도, 대도, 상도)은 주택단지로 바뀌었고, 명사십리로 불렸던 모래밭과 소나무 울창했던 숲에는 포항제철이 들어섰다. 돛단배 떠있던 60년대의 영일만은 어디가고, 달구지와 마부는 이제 볼 수 없는 먼 풍경이 되어버렸고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도윤 작가의 사진은 더욱 귀한 역사가 된다. 1970~80년대,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을 다닐때는 간첩으로 오인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기에 결코 그만둘 수는 없었다. 예술이란게 예나 지금이나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평생을 내조해준 부인이 고맙다고 한다. 그는 돈 벌어서 집에 갔다 준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오히려 부인이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꿋꿋하게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예식장과 웨딩샵을 했는데,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사업이었지요." 사업에는 소질이 없는가보다 하고 손을 뗐지만 "그때 손해는 좀 봤다"며 웃는다. "사진은 작가가 바라본 형상의 내면세계가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도윤 작가의 사진은 힘든 시대를 살아온 팍팍한 마음들에 작가의 너그러움이 더해져 추억으로 자리잡는다. "지금 젊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깊이가 없다고나 할까요. 전시회에 가보면 색깔만 화려하고 내용이 없다"고 한다. 그냥 화려해서 보기만 좋아야 하는 사진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끄집어 낼 줄 알아야 진정한 사진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한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카메라는 거리 노출 타임만 맞추면 누구나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찍는데는 사진의 본질구상, 셔터찬스, 귀중한 소재발견 등이 우선돼야 훌륭한 작품을 찍을 수 있다는 그 의 말은 발품을 팔아야 가능하다는 뜻일것이다. 이도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기쁨과 슬픔, 아픔과 고뇌가 종횡무진 펼쳐진다. '그의 사진 앨범에는 1960년대 영일만 일대와 포항 구석구석을 누볐던 오래된 풍경들, 그리고 평범하고 꾸밈없는 우리 내 이웃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잡혀있다. 좋은 사진을 펼쳐들면 우리는 그 작품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간이 오버랩된다. 이것이 바로 기록의 열정이 아닐까?. "작가는 지금은 잃어버린 포항의 옛 모습과 함께 그 시절의 풍경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생업을 이어갔던 사람들의 애환과 삶을 투명할 정도로 농익은 흑백 필름 속에 담아내고 있다"고 어느 어느 평론가는 말했다. 서정사진의 진실이란 서정 시(詩)처럼 그 대상이 가진 것들을 온 마음으로 담아내려는 작가의 태도와 의식에서 표출된다. 그가 사진첩에 담아낸 포항의 사진들은 비단 역사성뿐만 아니라 포항과 포항사람들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이 더해진 것들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그의 사진이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연민이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 붉게 물든 노을이나 어르신들의 주름이 보는 이의 가슴에 아픔처럼 꽂히는 것도 사라져야 할 것들이고 이미 사라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는 부산 성지곡 촬영대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버스안에서 구입한 지 얼마되지도 않은 아사히펜탁스 SPF를 소매치기 당했다고 한다. 왠종일 촬영하느라 너무 피곤하기도 했지만 붐비는 만원버스에서 카메라 가방의 중량을 못느꼈기 때문에 부전역에 내리고 나서야 소매치기 당한 걸 알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힘들여 찍은 사진을 잃어버린 허탈감은 노동의 무게보다 훨씬 컸다며 사진작가들은 카메라를 꼭 목에 걸고 다닐 것을 당부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는다. 사진 인생과 더불어 한평생 그가 숱한 고생을 마다않고 담아낸 포항의 생생한 역사를 펼쳐낸 사진들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국인의 삶의 지반이라 할 수 있는 도시 곳곳의 생생한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래서 사진적 시선의 진실함을 느끼게 한다. 그는 자신의 사진 중에서도 故 박태준 포스코명예회장을 찍은 사진을 애장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이 사진을 가져 갈만큼 뛰어난 구도와 음영비율이 마음에 들었다"며 오랜 세월 사진을 찍어왔지만 꼭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점 건지기는 힘들다고 한다. 이 마음은 마치 도공이 가마에서 꺼낸 수많은 작품 중 마음에 드는 한 두점 건지고 좋아하는 표정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고단한 삶의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대한국의 가장 숨 가쁜 시절을 보내야 했던 역사성이 들어있기에 더욱 귀하다. 과거의 모습만이 아닌, 현재화된 살아있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모습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윤 작가는 2013년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주관한 문화출판대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포항 선린대학교에서 포항의 미래 사진계를 짊어질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글=진용숙 편집위원사진=권정호 보도사진가
이도윤 사진작가▲한국사진협회 자문위원▲한국영상동인회 자문위원▲한국사협 포항지부장 역임▲경북미술전람회 초대작가▲한국사진문화상 수상(2012.3)▲이도윤개인사진전 6회▲이도윤사진출판 기념 4회▲선린대학 포토스쿨 교수역임 ▲중앙사진콘테스트 금상 수상 ▲뉴스보도사진 최우수상 수상 ▲아세아 태평양 사진전 우수상▲전국 영상의 적 금상▲경북 관광사진전 금상▲프랑스 파리 사진전 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