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다송 (1837년 여름 스님이 52세 때)'을 지은 초의 의순선사(1786~1866). 동다송은 해거도인 홍현주의 부탁으로 1837년 조선 후기의 승려 의순(意恂) 호는 초의(草衣)가 지은 책으로, 다도(茶道)를 시로 설명한 글이다. 전체31송을 수록하고 있으며, 제목은 '동쪽나라의 차를 칭송하다'이다. 내용은 차의 역사와 차나무의 품종, 차의 효능과 만드는 법, 생산지와 품질 한국차의 역사와 다도의 전통 등을 담고 있다.  동다송의 구성은 31개의 본문과 5개의 주석문(註釋文)으로 17송으로 인용문은 다산이 쓴 것으로 알려진 동다기(東茶器)와 걸명소(乞茗疎)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원(中原)의 차에 대한 고전(古典)이다. 초의스님은 동다송의 그 모본(模本)을 만보전서(萬寶全書)로 하였으며 원래는 동다행(東多行)이었다. '행'과 '송'의 뜻은 차이가 없다. 행(行)이란 한시(漢詩)의 한 종류로 음악에 맞춰 부를 수 있는 시가(詩歌)를 말한다. 송(頌)은 쉽게 설명하면 불교의 게송(偈頌)을 뜻한다. '동다'라는 뜻은 일반적으로 '동쪽의 차' '동국(東國)의 차'로 풀이 하고 있다.  초의선사는 추사 김정희(1786~1856)와 동갑이며, 학연을 맺은 다산 정약용(1762~1836)과는 24살 차이가 난다. 24세 되던 1809년에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유학과 시를 배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가졌고, 추사 김정희와는 30세(1815년)에 다연이란 우정을 이어갔다. 초의선사는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김정희를 찾아가기도 하고 인편으로 자신이 직접 제다한 차, 즉 '초의다'를 보내주곤 하였다. 선(禪)수행을 차(茶)를 매개로 한 다선일미의 차문화를 부흥시켜서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다.  추사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재미있는 협박성 편지글 " 나는 대사를 보고 싶지도 않고 대사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다네. 다만, 차의 인연만은 차마 끊어버리지도 못하고 쉽사리 부수어버리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니, 편지도 보낼 필요 없고 다만 두 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네. 그러지 않으면 내 몽둥이질을 절대 피할 길이 없을 것이야 "  그리고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귀양 사는 동안 승려 아암 법명(法名)은 혜장(惠藏)(1772~1811)에게 차 보내주기를 청하는 편지를 하나 더 소개하면, "고통이 많은 이 세상 중생을 제도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시를 베푸는 일이며, 이름난 산의 좋은 차를 몰래 보내주는 것이 가장 상서로운 일이라오. 모쪼록 목마르게 바라고 있음을 생각하고, 은혜 베풀기에 인색하지 말기를"이라고 적고 있다. 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볼 수 있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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