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시대,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한 켠에서 전문서적 등을 다루는 작은 책방들이 경주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그들, 책방의 순기능에 충실하며 소신있게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공들을 만나본다. 그 첫 주자는 역사여행전문서점 책방 '나정'이다. 
 
비릿한 삶의 냄새들 진한 전통시장통 한 가운데 고요한 섬 같은 책방이 있다. 봄비가 질척이는데도, 왁지지껄 봄이 요란한데도 역사여행전문서점 책방 ‘나정(대표 이응윤, 54)’은 끄떡없다.
  경주 중앙시장 따닥따닥 붙어있는 작은 가게들 중 책방 ‘나정’을 찾았다. 중앙시장 1층 8동 38호,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책방은 말 그대로 ‘방’ 두 칸 남짓으로 보인다. 손님이 앉을 자리도 여의치않아 책을 들고 서 있을 수 있는 정도다. 그럼에도 책과 주인이 내뿜는 아우라는 깊고 넓다. 
 
책들 사이, 책방 주인 상반신만 겨우 보이는데 온통 책들로 빼곡하다. 주인장 뒤 진열장 책들은 비매품으로 소장용이란다.
  얄상하고 그림이 많아 가독성이 좋고 신변잡기를 다룬 책들이 많이 팔리는 요즘의 시류에 비해 역사서들은 심도가 깊고 두꺼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신라의 역사와 경주 여행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핫한 대중서 몇 권도 눈에 띈다.
  책과 함께 번듯하게 커피가 동반되거나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갖춘 여느 서점들과는 달리, 시장통 한 가운데 있는 책방 입점의 위치나 배경이 발상의 전환이라며 신선하다고 여겼는데 그의 책방 위치 결정에는 현실적 고민이 뒤따랐다.
  그는 “책은 벌이가 시원찮잖아요. 그래도 한 10년은 해 봐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시장 쪽으로 일 년 정도 유심히 봤어요. 월세가 싸서 서점 열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나서 결정했죠”라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위치가 화제성을 몰고 있다. SNS 덕인지 경주여행 오는 이들도 전통시장 구경하다가 우연히 들르거나 입소문을 듣고 여행 관련서 등을 사가는 예가 많아졌다고 한다.
 
책방 ‘나정’은 신라의 시작을 알리는 박혁거세 탄생지인 ‘나정’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이응윤 대표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신라역사문화 관련 직장에 근무하고 편집대행업과 문화유산해설사로도 활약했다. 그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져왔던 터였다.
  2019년 11월 책방 문을 열었지만 이내 코로나19가 터졌고 올해로 3년째다. 
 
이 대표는 “예전부터 책방을 운영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경주에 살면서 평소 좋아하는 역사서를 다루고 싶었고 관련한 직장에도 일했던 경험이 있어 이 일을 시작했다. 역사여행 관련서는 출판되는 족족 구비하고 있다”고 했다.
책방을 찾는 이들 중에는 전문가들도 있는데 그들과는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는 “역사서는 대중들이 많이 찾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일목요연하게 일별할 수 있는 정도로 갖추려고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일일이 서점을 찾아다니며 역사서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고 싶다. 아무래도 역사에 관심 있고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손님 중 90%이고 단골로 이어진다”고 했다. 
 
3년여 운영하는 동안 베스트셀러로는 강석경 선생의 ‘이 고도를 사랑한다’와 이상훈 작가의 ‘신라는 어떻게 살아 남았나’를 꼽았다. 이 대표는 “꾸준하게 사랑받는 책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다. 이들 책은 출판사별로 다 구비해 놓았다. 제가 굳이 추천한다면 삼국유사다. 그리고 삼국유사와 관련된 이야기, 즉 특정 주제들을 뽑아냈거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삼국유사 위주로 많이 권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큰 꿈은 아니지만 공간이 확장된다면 경주와 신라에 관련한 도서를 죄다 갖추고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열람하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작은 모임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목표는 딱 하나 있다. 신라와 경주 고대사 관련 책들은 전문서는 물론, 대중서도 최대한 다양하게 갖추는 거다.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고 한다.
이 대표는 대중적인 역사서 집필과 여행서 중 최근 경주에 관한 주제의 책들이 뜸한 것에 아쉬워하기도 했다. 코로나 엔데믹 시대가 열린 올해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책방 나정이 잘 ‘버텨서’ 건재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