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시절에 정부방침에 의하여 탁아소, 농번기 탁아소, 유아원 등의 보육 시설이 '새마을유아원'으로 명칭이 바뀌고, 경주에도 사정동에 시립 '경주새마을유아원'이 처음으로 설립되어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교사자격증을 소유한 보육교사 희망자들에게 마치 공립 초·중등학교와 같이 선망의 직장으로 인기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공립기관이므로 신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에서 전공한 유아교육이론에 따라 유아들을 보육과 교육을 하면서 생의 보람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는 경주시에 몇 개의 사립유치원이 설립되어서 만 5세 유아들의 취학 전 교육을 하고 있었고, 사립유아원도 운영하고 있었으나,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학부모로부터 받는 수익자부담금에 의존하다 보니 대체로 충분한 급여를 지급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경주새마을유아원은 교사 채용공고가 나오기 전부터 관심이 높아져서, 담당 부서 공무원이 걱정이 많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경주중학교 동기생인 그 담당자가 탑동 누옥(陋屋)으로 귀한 걸음을 해 주었다. 그 친구는 중학교 재학시절에도 모범생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데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유학한 영재(英才)였다. 당시 나는 유아교육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도 1970년대는 서울에서 대학원 다니며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81년도에 대학교수로 부임하였기에 졸업 후 그사이 20여 년 만에 만났으니, 상당히 반가웠던 것이다.
인근 지역사회에는 포항에 소재하는 대학에 유아교육과가 있었고, 울산 등지의 대학에는 유아교육과가 개설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친구가 찾아와서 엄밀하게 새마을유아원 보육교사 공개채용을 위한 출제를 부탁했던 것이다.
약간 명의 교사를 채용하는데, 여러 곳에서 청탁이 있어서 그 청탁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담당자의 입장에서 임용선발고사를 제안했던 것이 합의가 되어 이렇게 출제를 부탁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때 부탁한 친구의 말은, '원래 출제자는 출제 후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여 출입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나를 믿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출제한 문제와 출제자를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것을 거듭 당부하였다.
청렴한 우수공무원이란 소문답게 원칙적인 부탁을 하였기에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확답을 하고 출제의뢰를 고맙게 받았던 것이다.
인간의 자격을 평가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필답고사, 실기고사, 면접, 시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해서 그 성적을 종합하여 서열화하는 것인데, 필답고사에서 보면, 출제를 전공과별로 어떻게 배열하여야 하며, 각 문제의 난이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중요한 변인이 된다. 전공과목에서도 그 비중을 달리해야 하므로 그 적정을 정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유아교육개론을 비롯한 유아교육전공과목과 교직과정 필수과목 등에 따라 출제문항수를 먼저 배정한 다음 출제를 했던 것이다.
여러 교수에게 출제를 의뢰한 것도 아니고 오직 나 한 사람에게 부탁하였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수험자들이 문제를 보면 출제자의 학문적 수준까지 노출되므로 더욱 신경이 예민해졌다. 또한 객관식 문제이므로 그 답지(答枝) 다섯 개의 매력도 중요하므로 문제의 정답과 오답, 정답과 비슷한 오답, 정답과 오답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애매성 오답 등을 진술해야 하며, 또한 각 문제마다 정답의 빈도가 다른 순서로 배치하는 등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조건을 내포하고 있다.
친구 덕택에 처음으로 경주새마을유아원 교사 채용고사 출제위원이 된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었는데, 요즈음 고위공직자의 자녀 대학편입학문제 등으로 입학이 취소되고, 또 장관후보자의 자녀 편입학문제로 매스컴이 시끄러우니, 대학입시의 신임도가 문제시되는 듯하다.
가장 규범을 지켜야 하는 곳이 교육기관인데, 그것을 알고 있는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에서 청탁 등 일반적인 사회의 부정한 생각으로 입시평가가 이루어질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생권력(生權力)이 작용되더라도 절대로 부정입학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존립 목적의 절대조건이기 때문이다.
모범공무원이었던 정직한 친구가 믿고 부탁했던 '출제한 문제와 출제자를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당부의 정직성은 지금도 잊을 수 없지만, 결국 그 부탁은 그 친구가 서기관으로 승차하게 된 공직자의 올바른 행도(行道)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