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늦게 꽃바구니를 받았다. 분홍, 빨강, 와인색 카네이션이 어울린 꽃바구니.   5월 14, 15일 집에 없다고 문자 보냈더니 미리 보낸 것이다. 첫 부임지. 첫 해에 가르친 제자다.  2학년이었던 유미는 글을 참 잘 썼다. 그 때 나는 수업만 마치면 금강가로 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글 쓰는 걸 가르쳤다. 아이들도 나도 무지무지 재미있던 때였다.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고 조선, 동아 소년일보에 주말마다 아이들 글이 실리고…. 유미는 그 해에 처음 생긴 전국 글짓기 장학생에 뽑힌 제자였다. 산문을 잘 써 유미는 크면 꼭 소설가가 될 거라고 믿었다. 글짓기 장학상에 1등으로 뽑힌 유미는 서울로 전학가고 나는 울산으로 시집을 왔다.   글 잘 썼던 아이들, 특히 유미가 궁금해서 신춘문예 당선작 신문마다 찾았다. 틀림없이 소설가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마다 찾아도 유미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신춘문예 당선 신문을 사러 고속 터미널에 가곤 했다.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당선작가와 작품을 찾는 그 오래 전부터 나는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궁금했다. 그러한 해가 계속되다. 어찌어찌해 유미를 찾았다. 유미는 광역시 국립대학교 단과 대학 학장이 되어 있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대학. 내가 조심스럽게 "유미가 맞느냐?"고 전화를 했을 때 유미는 울먹이며 맞다고 했다. 그 때가 3월이었던가. 그 해 스승의 날에 유미는 50송이 카네이션을 보내고 재훈이랑 둘이 찾아왔다.   재훈이는 고전읽기 독후감 대회 충남에서 일등을 해 지도교사와 학생을 대통령이 초청해 함께 청와대에 다녀 온 제자다. 재훈이는 상경대 출신. 둘 다 문과가 아니었다.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며 생각한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작가가 되면 좋지만, 어느 자리에 있던 어느 장소에 가 초대 말, 축사를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쓸 수 있으면 된다고.  둘은 물론, 내가 가르쳐 연구소에 있는 미정이나 경우도 자기소개서나, 논문을 쓰는 데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제자들은 영어로 논문을 써 세계학회에 발표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문장을 다듬는 일엔 자신 있다고 했다. 참 잘 커 준 제자들이 고맙다.   가끔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만난다. 그 중엔 현재 근무하는 교사도 있는데 학교생활이 힘들어 명예 퇴임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말 안 듣고 제멋대로인 아이들도 많다. 음식점, 갤러리, 연주회 등 공중도덕이나 예의는 저만치…. 도자기 전시장에서 아이들이 뛰고 놀아도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지 않는 걸 종종 본다. 음식점에서도,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 질서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나무랄 수 없다고 한다. 폰으로 사진을 찍어 오면 학부모는 경찰서에 신고하는 세태이다. 애들이 커서 부모를 공경할까? 스승의 날 선생님께 편지 한 통이나 전할까?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꽃바구니`를 받고 미안하다. 유미가 사는 광역시에서 나 있는 데까지 거리는 상당하다. 꽃집 주인이 손수 들고 오는 수고가 무료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나날이 변한다. 사람도 변한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해마다 보내는 꽃바구니도 이쯤에서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해마다 신춘문예 신문을 보며 유미를 찾던 오랜 세월 끝에 찾은 유미나 재훈이는 내게 `선물`이다.   이제 그 `만남의 선물`을 받고 설레서 쿵쿵거렸던 그 날의 감격을 혼자 새기기만 해도 좋을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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