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곡조의 유행가 속엔 많은 의미가 내재돼 있다. 가사는 물론이려니와 곡 자체가 안겨주는 깊은 감흥 때문이랄까. 가수 심수봉이 부른 노래 '무궁화' 곡이 그것이다.  "이 몸이 죽어 한 줌의 흙이 되어도/하늘이여 보살펴 주소서/내 아이를 지켜 주소서/세월은 흐르고 아이가 자라서/조국을 물어오거든/강인한 꽃 밝고 맑은/무궁화를 보여주렴/무궁화 꽃이 피는 건/이 말을 전하려 핀 단다/참으면 이긴다/목숨을 버리면 얻는다/내일은 등불이 된다. <생략>"라는 가사는 한 편의 시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화 무궁화의 이미지를 선명히 부각 시키기에 충분한 내용이 아니던가. 이 노래를 가만히 입속으로 부르노라면 이슬 머금고 피어있는 고결한 자태의 무궁화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아울러 자신도 모르게 가슴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용솟음치곤 한다.  수많은 종류의 꽃 가운데 유독 무궁화만이 이런 감정으로 이끈다. 이로 보아 한낱 무심히 피어나는 꽃에도 그것이 지닌 품격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지는 듯하다. 필자 역시 무궁화를 바라보노라면 범접 못할 기품까지 느끼잖은가. 그러므로 국화(國花)다운 기개마저 지닌 무궁화다.  꽃은 계절 따라 저마다 향기를 지닌 채 다투어 피어난다. 어느 꽃인들 아름다움이 없으랴. 하다 못하여 들녘에 피어난 망초 꽃이며 제비꽃 등 이름 모를 들꽃조차 나름대로 향기와 미를 지녔잖은가. 하지만 꽃은 이것만 지닌 게 아니다. 그것이 지닌 특성 및 형태에서 인간은 많은 교훈과 지혜를 얻는다면 지나칠까.  튤립만 하여도 그렇다. 이 꽃의 원산지는 파미르 고원이 아닐까 싶다. 중앙아시아의 내륙 산간 지방의 추위는 혹한 아닌가. 엄동설한이 끝난 후 머잖아 봄이 찾아오면 찬란한 색깔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꽃이 야생 튤립이다. 그곳 유목 민족들은 이 꽃에 반했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당시 유목 민족이 터키와 페르시아로 이주하면서 그들과 함께 튤립도 옮겨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튤립은 터키에서 그 진면목을 높이 인정받았다. 유목 민족들은 자신들의 낙원은 오로지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을 꿈꾸었을 것이다. 꽃과 과실이 풍성히 열리는, 나무가 울창한 정원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그 증표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 sultan 왕)들은 천상의 낙원을 재현하는 방편으로 정원 가꾸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잖은가. 이 때 맑은 샘물이 흐르고 분수가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어내는 왕궁의 정원을 수놓은 게 튤립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튤립의 어원은 터번(turban)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꽃 모양이 터번과 비슷하게 생겨서인가보다. 이 꽃을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도 많이 심었다. 곧 이들 나라 주변 국가인 네덜란드로 튤립은 삽시간에 퍼졌다. 이는 빈과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던 식물학자 클루시우스(1526-1609)에 의해서였다. 그가 1593년 라이덴 대학 교수로 초빙 되면서 구근(球根)을 갖고 와 재배한 것이 오늘날 튤립이 네덜란드를 상징 하는 꽃이 된 계기다.  또한 터키어로 튤립은 라레(lale)이다. 아랍어인 '알라'와 같은 맥락으로 이는 신을 일컫는다. 이는 튤립은 만개(滿開) 할 때 오히려 고개를 숙이기에 붙여진 명칭인 듯하다.  이런 튤립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네와 대조적인 모습에 경건함이 우러난다. 인간은 어떤가. 높은 명예 및 막강한 권력, 부를 손아귀에 쥐면 외려 고개를 바짝 세우고 거드름을 피우기 일쑤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는 중국 무제의 '추풍 가'에서도 엿볼 수 있으련만….  "환락이 극에 달했지만 슬픈 생각이 많도다./젊음이 얼마이리요./늙는 것을 어쩌겠는가" 라는 이 노래를 음미하노라니 인생 및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절감한다.  뿐만 아니라 한낱 식물인 튤립이 신으로까지 격상 된 연유를 알만하다. 비록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튤립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뽐내기는커녕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에서 인간은 아마도 신(神)을 발견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언제쯤 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이 문제를 고뇌해 봐도 그 길만은 멀고 또 먼 길일 듯하여 못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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