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말해지는 내 언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죠. 그 울림을 끊임없이 주눅 들지 않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저의 꿈입니다”
 
지난 20일, 이하석 시인이 경주 문정헌을 찾았다.
 
이하석 시인은 이달 26일까지 문정헌에서 열리는 ‘제1회 문정헌 멀티 시전, 경주를 노래한 한국의 명시전’에 선정된 20명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번 명시전에서 동시대 작품으로 선정된 윤석산, 정호승, 이성복, 송재학 등의 시인 중에서 이하석 시인의 시 ‘경주 남산’이 선정됐다.
 
김성춘 국제펜한국본부경주지역위원회장, 조기현 펜경주 사무국장, 김경나 시낭송가와 독자가 함께 한 자리에서 이하석 시인은 자신의 문학관과 지역 문학계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하석 시인은 1948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해 대구로 이주해 쭉 대구에서 살고 있다.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금속성 이미지와 대지적 공간의 결합을 통해 약소 민족의 슬픔과 극복 의지를 노래한 ‘투명한 속(1980)’, 소외되고 사물화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김씨의 옆얼굴(1984)’, 도시의 삭막함과 자연 사이의 통로를 찾으려는 ‘금요일엔 먼 데를 본다(1996)’ 등의 시집과 야생화를 매개로 우리가 외면해온 고난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집 ‘꽃의 이름을 묻다(1998)’를 썼다. 
 
이로써 현대문명의 반 인간성을 독창적인 광물학적 상상력으로 표현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시업들로 김수영문학상을 비롯해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광협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대구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 시인은 이날, 과거 초기시들에서는 산업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저널리스트의 포착이기도 했던 현실적 문제에서 문학의 전형성을 발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시작을 했었다면, 최근엔 그런 의식을 굳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 현실적인 문제를 쓰되,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정직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비교적 간명하고 정직하게 짧은 호흡으로 쓰려고 한다”면서 시에서든, 문화에서든 관념성을 거의 버리고 있다고 했다.
  ‘칠십 년 넘어 관념의 껍데기들을 버리고 다시 알몸으로 섰다’는 시인은 연애 시집 하나 내겠다는 ‘꿈’도 내비쳤다.
  이 시인은 경주와 관련한 글도 자주 썼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경주 남산을 사랑해온 시인은 ‘코 떼인 경주 남산(2020)’을 발간했다. 
 
이 책은 천년 불국토 경주 남산의 길잡이로, 경주 남산 골짜기 구석구석을 온전히 발로 걷고 손으로 더듬은 시인의 남산 사랑이 문학의 향기로 흐른다.
  ‘삼국유사의 현장기행(1995)’도 철저한 현장 답사기로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설화와 신라향가도 함께 수록하고 있다. 
 
시인은 “매일신문 기자 재직 중에 1년 동안 현장을 찾아다녔는데, 매주 경주를 다녀가기도 한 인연이 있다”고 했다.
  경주의 숱한 유적 중에서도 경주남산을 가장 좋아한다는 시인은 ‘남산 같은 유적지는 세계에서도 없다’고 한다. 그는 최근 진지왕과 도화랑의 사랑 이야기를 향가 형식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아래는 이번 문정헌 전시 선정작 중 ‘경주 남산’ 전문이다.
  ‘돌 안에 슬픔이, 금 가기 쉬운 상처가/ 들어앉아 있다/ 미소를 머금은 채// 누가 그걸 깎아 불상으로 드러내놓았을까/ 제 마음 형상 깎아내놓고/ 내 슬픔 일깨우려 기도하라는가// 나는 없고/ 이 돌만이 오래 있을 뿐/ 슬픔 앞에 불려온 이들 기도로/ 천둥 치면 어둡던 돌의 뒤가 환해진다’.
 
‘볼수록 새로운 땅 경주’에 시인은 10여평 작은 땅에 오두막 같은 은신처를 원했다. 시인의 문화적 자산에 비하면 턱없는 ‘짜투리’ 공간이다. 무욕한 소탈함은 시인이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경주는 특히 욕심과 규모, 권위를 앞세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문화인들의 겸손한 안목을 통해서 문화유적을 복원해야 한다. 또 기존의 문화예술 관련 단체도 속한 단체를 뛰어넘는 지성을 표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경주문학계에 대해서는 ‘신라천년’이라는 아득한 울림 위주의 문학이라며 소위 ‘신라의 달밤’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은 것이 경주 문학의 큰 함정이자 걸림돌이라고 했다. 
 
“지나간 시간에 너무 함몰돼, 경주라는 정체성에 주눅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특출하게 현재성을 가지고 과거의 관념을 깨뜨릴 수 있는 소리가 나와야 하고 그걸 열어 재끼는 게 가장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주는 과거와 함께 현재도 여전히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소통되고 있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고답적인 안목이 안타깝다. 경주에 사는 것은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세계적 의식이나 인식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매일신문, 영남일보 신문기자로도 일했던 시인은 “언론과 문학을 상극으로 봤다. 문학에 절대 도입할 수 없다. 항상 언론인으로서의 프레임이 문학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면서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은 문학이고, 다만 기자로서 현실을 응시하고 뉴스를 챙기다 보니 그러한 감각들은 상당한 도움이 됐었다. 그러나 저널리즘적 요소와는 다른 것”이라고 했다. 전직 신문기자기도 했던 시인에게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시인은 끝으로 “정직하게 제 자신이 어떤 말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언제나 살아 있는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자신에 충실하고 응시하는 것이 꾸준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