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성대(太平聖代)는 태평(太平)과 성대(聖代)가 합쳐진 말이다. 태평은 세상이 안정되어 아무런 걱정이 없고 평안함을 뜻하고 성대는 성세(聖世) 즉 성군(聖君)이 다스리는 시대를 말한다.  성군(聖君)은 덕이 아주 뛰어난 임금이고. 덕(德)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는 어질고 올바른 마음이나 인격이라 하였으니 태평성대는 덕을 지닌 성군이 다스리는 안정되고 걱정 없이 평안하게 생활하는 시대라 하겠다.  옛날 중국의 요순시대를 주지하는 바와 같이 태평성대로 일컬어오고 있다. 제요(帝堯)와 제순(帝舜)이 다스린 시대를 합쳐서 요순시대라 부른 것이다. 제요는 이름이 요(堯)라는 제왕이고, 제순은 이름이 순(舜)이라는 제왕이다. 이 제요와 제순을 각각 요임금, 순임금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두 임금은 정치를 잘 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요순시대`라 부른 것이다.  요임금은 나라이름을 당(唐)이라 했고, 순임금은 나라 이름을 우(虞)라고 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보면, 제요(帝堯)도당씨(陶唐氏)는 제곡(帝嚳)의 아들로서 하늘과 같고, 아는 것이 신과 같았으며, 나아감은 해와 같고, 바라봄은 구름과 같아서 존숭을 받았다.  그는 평양에 도읍하여 궁궐을 거창하게 짓지 않고, 띠(茅)로 지붕을 이어서 처마도 자르지 않았으며, 계단도 돌을 다듬어 쌓지 않고 흙으로 3층 계단을 만들었다고 하니, 서민의 가옥과 비슷하게 지은 것 같다.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 가를 알기 위하여 남루한 미복(微服)을 입고 길거리에 순수(巡狩)차 나가니, 어떤 노인이 자기 배를 두들기며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일을 마치고 휴식하네. 우물을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을 것을 얻네. 이런 생활에서 제왕의 힘이 나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리오 (日出而作하고 日入而息하며 鑿井而飮하고 耕田而食하니 帝力何有於我哉리오)"  정치는 백성들이 평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데, 요임금은 노옹(老翁)이 자기 배를 두들기며 해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가서 쉬며,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얻을 수 있으니, 거기에 더 이상 임금의 힘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참으로 자연스럽고 평온한 삶의 풍경이다. 지족(知足)한 생활이념을 느끼게 한다.  비록 오늘날과 다른 시대이지만 통치자를 중심으로 이속(吏屬)들이 함께 이룬 태평성대라 할 것이다. 그 때는 인구가 팽창하는 시대라서 생활여건이 어려웠을 터인데, 요임금 스스로가 띠 집을 짓고 검소하게 살면서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인 것이 아마도 모델링을 할 수 있는 교훈적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순임금은 이름이 중화이고 아버지는 고수이다. 아버지가 후처에 빠져 작은 아들 상(象)을 사랑하여 항상 순임금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순임금은 효제(孝悌)의 도리를 다하여서 사는 부락이 2년에 읍이 되고 3년에 도시를 이루었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서 도시가 팽창하게 된 것을 순임금이 효우(孝友) 즉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사이의 우애가 돈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를 잘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사는 고을은 아름답고 따뜻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기에, 그런 곳에 정주(定住)하고픈 것은 인간의 소박한 바람일 것이다.  잘 살고 싶은 곳으로 사람이 집중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이 삶의 최적지를 찾아 세거지를 떠나가다 보니 지방 도시는 날로 수축해지고 있어서, 그로인해 해마다 늘고 있는 시골의 폐교를 잡초의 군락지로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팔려고 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아 매수자를 찾기가 어려워서 효율적인 활용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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