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대하기가 매우 안타깝다. 반인륜적(反人倫적)인 내용 때문이다. 최근 20대 여성이 아이를 낳아 살해 했다고 한다.  이는 어머니로서 모성애의 말살은 물론 인명 경시이기도 하다. 살해 동기는 단순히 아기의 아비가 누군지 몰라서였단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신의 헤픈 정조관념을 성찰해야 했다.  어찌 이런 일로 어린 자식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는단 말인가. 그것도 친어머니로서 말이다.  어머니는 누구인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드는게 어머니의 숭고한 모성애가 아니던가.  자신을 낳아 희생과 헌신으로 양육한 장애인 아버지를 때려죽인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권투 선수 소식도 있다. 이 내용을 접하자 갑자기 두 귀를 헹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한편 이 내용이 지난 1983년 WBC 라이트 플라이급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장정구 권투 선수와 비교 되었다.  장정구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적빈(赤貧) 속에서 고생만 한 그의 어머니는 권투로 성공하려는 장정구의 집념에 에너지원이었다.  어머니를 편히 모시려는 그의 의지가 세계 챔피언의 타이틀을 획득케 했잖은가. 그의 유명세보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더 돋보인다.  장정구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하늘도 움직인 듯하다. 그토록 그가 갈망하던 세계챔피언이 되는 영광을 안았잖은가.  이로보아 예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성공한다는 말이 맞는 성 싶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가 무엇으로든 성공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진리다.  당시 장정구와 대결한 일라리오 사파타는 한국 오기 전 재산 문제로 자신의 어머니를 구타했다.  이 죄로 자신의 나라에서 수십일 간 구류를 살았다는 말도 있다. 이런 패륜아여서인지 그는 장정구에게 보기 좋게 참패했다.  친족 살인 및 학대야 말로,`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유행가 가사가 절로 나올법한 경악할 뉴스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진 세태라고 하지만 어찌 자신의 부모를 구타할 수 있을까.  이 행위 자체도 하늘이 노할 일일진대, 심지어 부모를 잔인하게 때려서 숨지게 하다니….  이번에 법의 심판을 받은 권투 선수의 아버진 장애마저 지닌 분 아닌가. 성치 않은 몸으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자식을 뒷바라지 했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이 은혜는 머리털을 뽑아 짚신을 삼아 주어도 평생 다 못 갚을 터인데 자식 손에 죽임을 당했다. 그의 행위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이게 아니어도 현대는 부모를 공경하는 일도 결혼의 걸림돌이 된단다. 언젠가 지인 아들이 맞선을 봤다.  그녀 아들이 맞선 자리에서 부모님께 효도 하는 여성이라면 당장 결혼 하고 싶다고 말했단다.  이 말에 상대방 여성 안색이 순간 변하더란다. 곧이어 여성은 효자 남편은 아내를 힘들게 한다며 퇴짜를 놓았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하긴 요즘 일부 젊은 여성들은 시부모 공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부모가 며느리 비위 맞추고 눈치 보는 세상이란 말도 회자될 정도다.  미혼인 세 딸을 둔 필자다. 평소 어미로서 딸들에게 장차 시부모님께 효를 다할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결혼하면 세 딸들도 머잖아 시부모가 될 것 아닌가. 그 세월이 먼 것 같아도 곧 닥쳐올 일이다. 이게 아니어도 부모를 공경하고 효를 다하는 게 사람 된 도리임을 평소 세 딸들에게 세뇌 시키다시피 하고 있다.  필자에겐 구순(九旬)에 가까운 친정어머니가 계시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하여 일주일마다 찾아뵙고 음식을 해다 드린다.  때론 필자가 몸이 아파도 죽을 쑤고 치아가 부실한 어머니를 위해 반찬을 요리 하기도 한다. 이럴 땐 음식을 사서 드리라고 주위에선 권한다.  하지만 정성껏 어머니 드릴 음식을 요리하기를 고집한다. 이는 자식으로서 의당히 행해야 할 일이어서다.  어린 날 어머니는 당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들을 방치 한 적 없다. 자식이 아프면 한 밤중에라도 등에 업고 맨발로 십 리 길을 마다않고 뛰어서 병원을 찾은 어머니다. 지난 어머니의 희생에 비하면 필자가 음식 장만 하는 일은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일 뿐이다.  예로부터 효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했다.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의 원인 중 하나가 핵가족화에 따른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소홀해진 탓이라면 지나칠까. 현재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지난날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서다.  그분들이 높은 교육열로 손톱, 발톱이 다 닳도록 우리를 공부 시켰기에 가능했다.  오죽하면 필자 학창 시절엔 대학을 일러 우골탑(牛骨塔)이라고까지 불렀으랴.  이제라도 부모님의 그동안 휜 허리를 여생 동안이나마 펼 수 있게 보살펴 드리는 일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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