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의 속설에 의하면, `코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귀 잘 생긴 거지는 없다` 라는 어휘가 있다.  자세한 근거는 알길이 없지만 아마도, 존귀한 자태나 품위 있는 말인 `귀태난다`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 같다.  귀는 사람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얼굴 좌우에 있으며 청각과 평형감각을 맡은 작용을 하며 귓바퀴의 준말이다.  귓바퀴는 겉귀의 드러난 부분으로 조류의 귀는 귓바퀴 대신에 구명으로 된 것 뿐이다.  인체에는 5가지 감각기관인 물체의 모양이나 빛깔 등을 분간하는, 즉 물건을 보는 신경의 현상이나 행동을 하는 눈의 감각인 시각(시감)이 있다. 냄새에 대한 감각으로 척추동물은 코에 있고 곤충은 더듬이에 있는 후각을 가진다.  소위 맛을 본다는 미각은 혀 따위로 맛을 느끼는 감각으로 달고, 짜고, 쓰고, 신맛을 아는 것이다. 촉각(촉감)은 온도나 아픔따위를 분간하는 피부의 감각기관이다. 동물의 피부나 촉모(고양이나 쥐의 수염), 더듬이로 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청각의 역할을 하는 귀는 말과 소리를 듣는 작용으로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큰 활동은 없지만 용모의 균형을 잡는 귀중한 위치에 있다. 달리 큰 활동은 없지만 용모의 균형을 잡는 귀중한 위치에 있다.  안경이나, 마스크를 걸치는 역할도 하지만 민감한 기관으로 행동의 자세와 태도를 지시하는 점이 두드러진 효과다.  귀는 다른 감각체와 달리 움직임 없이 제자리를 초연히 지키고 있을 뿐, 눈물이나, 침, 그리고 땀 같은 부산물이 거의 없고, 손의 간섭도 별로 타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한 사람의 유일한 친구는 한 쌍의 귀를 의미한다고 한다. 청각(귀)은 조용한 자세의 소극적 관리라면 나머지 넷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인체의 활로에 나서서 설치는 지체이다.  관심있는 귀는 언제나 말하는 입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또한 귀는 마음으로 가는 행로라서 자주 귀담아 듣는 일만 철저히 감당한다. 잘 듣고, 바르게 듣고, 옳게 들어야 다른 분체가 정의롭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말을 잘들어라 한다.  어떤 사건 사고의 증인은 보고 듣는 것이다. 목격자의 현장 그림(광경)과 들은 결과로 제 3자의 판단이 성립되는 것이다. 시각과 청각은 불가분의 관계로 사물인식에 큰 기여를 도모한다. 시청자란 말도 그런 까닭에 생긴 것이다.  귀는 쉬는 일이 없다. 눈은 떳다 감았다 하지만 코로 숨쉬고, 잠시 잠깐 쉬고, 입도 잘때는 말도 소리도 없이 조용하다.  하지만 귀는 밤낮으로 열어 놓고, 쉬고 자고 하는 동작은 없다. 밤에도 귀는 열어놓고, 희노애락의 의무를 완수해야한다.  조용한 듯 하면서, 그 동안 들었던 사실을 시로, 또는 노랫말 가사로 다른 사람에게 들리게 하는 역할은 귀뿐이다.  좋은 말씀도 듣지 못하면 말하는 사람이 무색해지고, 바르게 들어야 바르게 전하는 것이 귀의 역할이다. 다소 끔찍한 사건이지만, 필자가 수년전 일본 교토근교에 있는 이총(귀무덤)이란 곳을 방문했다.  악랄한 일본인들이 그 당시 조선인들을 잡아 심한 고문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으며, 죽음을 당한 애국인들의 수(숫자)를 증명하기 위해서 귀를 잘라 사망자의 수를 대신했던 귀무덤을 보았다.  자기네 말을 듣지 않았던 탓인지 귀가 그들에게는 공로의 숫자였다. 참 귀가 막힐 노릇이다.  선조들이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배우고 익힌 말씀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 사람은 귓문이 넓다 - 남의 말을 잘 듣는다는 뜻, 귓불은 만진다 - 운명만 기다린다는 말, 귀가 보배다- 배운 것은 없으나 들어서 아는 것이 있음을 이르는 말, 소리는 물체가 진동했을 대 청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의 준말로 음성이란 말에도 쓰인다.  우리의 내부에는 늘 두가지 소리가 있다.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와 육체에서 나느 소리이다. 양심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욕심은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다. 양심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욕심은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다.  욕심의 소리는 노래와 같은 쾌락을 찾고, 마음의 소리는 의무를 찾는다.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는 너무나 많은 소리가 우리의 심신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귀는 그 모두를 들어야 하는 운명의 존재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은 소리, 들어서 놀랄 끔찍한 소리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렇다고 소리란 반드시 귀로만 듣는것도 아니다.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소리일 수 있다.  싸늘한 감촉이 느껴지면 그것은 가을의 소리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정답게 느껴지면 그것은 곧 사랑의 소리가 될 것이다. 귀는 몰속에 비친 침묵의 햇살도 거품이 되어 들리고, 소리는 물방울이되어 물위에 뜬다.  그래서 내용과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못있는 소리도 전혀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눈은 밤이면 감고 자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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