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그 자체가 부(富)를 창출하는 기관과 같다. 이해타산에 얽힌 인간 아닌가. 결혼에 관해서도 역시 실리(實利)를 따져봐야 한다면 지나칠까. 그러나 이는 필자의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미국 럿거스 대 포페노 교수에 의한 계산이기도 해서다. 포페노 교수의 말에 의하면 부부 생활비가 독신 생활비보다 훨씬 절약된단다. 뿐만 아니라 가사를 분담해 생산성이 더욱 향상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것은 사실이다. 포페노의 언술이 아니어도 후회를 할지언정 결혼은 하는 게 원칙이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일까. 부부는 3주를 연구하고 3개월 사랑하며, 3년을 싸우고, 30년을 참고 견딘다는 말도 있잖은가. 경험상 이 말에 전적 공감한다. 가정은 인내의 장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서다. 오죽하면 프랑스의 비평가 세바스찬 샹포르는, “이혼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많은 집에서는 매일 저녁 그것이 부부 사이에 누워 있다” 라고 언술했을까. 이렇듯 결혼은 달콤함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평생을 부부가 함께 하며 온갖 고초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절실한 게 결혼 생활이다.   이 때 배우자와 어찌 의견 충돌이 없으랴. 이는 다름으로 만나서다. 하지만 사노라면 어느 사이 서로 닮아간다. 어디 이뿐이랴.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어림짐작한다. 그래 늘그막에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등 긁어줄 배우자가 곁에 있어야한다. 단절과 고독이 찾아오는 노년 아닌가. 옆에 내 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축복받은 삶일 것이다.   오죽하면 ‘효자가 불여악처(不如惡妻)’ 라 할까. 부부 이야기를 하노라니 젊은 날 읽었던 서머싯 모옴의 「인간의 굴레⸥ 라는 소설 어느 대목이 문득 생각난다. 실연에 방황하던 주인공 필립이다. 장차 장인 될 사람이 대뜸 필립에게, 물총새의 전설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리곤 그는, 물총새는 바다 위를 날다가 지치면 수놈 밑으로 암놈이 들어가 등에 업고 난다고 한 말이 참으로 인상 깊다.   ‘물총새 전설’을 거론하노라니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어느 부부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를 본 아내는 늦은 나이에 운전을 배워 남편 대신 그 트럭 운전대를 잡았다. 아내는 남편이 해왔던 것처럼 운전을 했다. 서울에서 부산 및 장거리를 일주일에 몇 번씩 남편과 함께 왕복한 지 수 년째란다. 수월한 고속도로는 아내가 운전한다. 번잡한 시내 길은 가까스로 기운 차린 남편이 운전을 맡곤 한단다.   남편은 아내의 운전석 뒤에 자주 누워 하루 네 차례 신장 투석을 마치면 비몽사몽이 된단다. 이때 남편 코고는 소리마저 아내는 생명의 소리로 여긴다. 그 소리마저 고맙고 듣기 좋다고 했다. 아내는 가끔 코고는 소리가 안 들리면 손을 뒤로 뻗쳐서 남편 손을 만져보곤 온기가 느껴지면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또한 곤히 잠든 남편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단다. 곁에 살아줘서 고맙다고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단다. 도대체 이런 마음이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아마도 이는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의해서일 것이다. 이 여인을 떠올릴 때마다 서머싯 모옴의 소설 「인간의 굴레 」에 나오는 물총새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어인일일까.   이때 허균의, 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님이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허균은 벼슬에 급제한 뒤 행장(行狀)을 써서 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삶을 기렸잖은가.    “ 내 나이 장난치기 좋아할 때였으나 부인은 조금도 싫은 기색이 없었오. 그러나 내가 조금만 방탕해지면 번번이 이를 나무랐소. 집은 가난하고 어머닌 늙으셨는데 재주만 믿고 허송세월 만 보낸다며 늘 나에게 학문을 권했지요. 그대는 영원한 나의 누님이나 다름 없오”라고 말이다. 하긴 아내는 누님, 요리사, 간호사, 벗이기도 하다. 병마가 덮쳐 앞이 보이지 않는 트럭 운전사에게 아내는 등불이나 다름없다. 또한 나태한 삶을 일깨워 학문 닦기를 독려한 아내 덕분에 벼슬자리에 오른 허균이 아니던가.   이들의 아내가 아니어도 이 땅의 모든 지어미는 남편에게 빛이자 든든한 후원자다.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수가 훌륭한 남자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그 남자를 조종한 것은 여인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