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재위 시절에는 당연히 내우외환의 연속이었다. 풍전등화와 같던 나라의 운명이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 휘둘리고 있던 상황에서 경순왕은 한시도 편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성에서 큰 난리가 벌어졌다. 왕에게는 그 난리를 피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당장은 몸을 숨겨야 했다. 일국의 임금이었지만 환난 앞에서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도성을 떠나 아무도 찾아낼 수 없는 곳을 찾다가 길이 험하고 심산유곡이라 무인지경에 가까운 곳을 찾았다. 작은 암자에 한 두 사람이 몸을 숨길 수 있는 동굴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이 지금의 양남면 나산리에 있는 보덕암이다.경순왕은 이 곳에서 목숨을 건졌다. 그래서 임금이 찾아와 몸을 피하고 환난을 면했다고 해서 ‘임금님을 구한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국구암’이라고 절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보덕암의 옛 이름이다. 보덕암에는 지금도 법당 옆에 경순왕이 몸을 숨겼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남아 있다. 좁고 낮은 이 동굴은 성인 한두 사람이 비와 이슬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보덕암은 토함산 아래 형제봉산의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해방 전까지는 기림사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다. 신라의 임금이 환난을 면한 유서 깊은 설화를 간직한 절이지만 법당과 요사채, 산신각이 산 중턱에 겨우 걸쳐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로 존재한다.법당에는 관세음보살 좌상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본존으로 모셔져 있고 화엄신장(華嚴神將) 탱화와 영단을 설치했다. 이 배치법은 통상적인 삼단 설치법인데 전통 방식을 따라 보는 이로 하여금 심비감을 느끼게 한다. 이 절의 창건 유래와 명칭에 대해서는 써놓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925년 법당을 중수하면서 쓴 현판에 적힌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판에는 “오호 자라대 선덕조이후 천유기 백년지간(嗚呼自羅代善德朝以後千有機百年之間)”이라고 표기돼 있어 이 절이 선덕여왕 때 지어졌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선덕여왕 재임 무렵인 신라 중엽에는 불교문화가 융성했다. 신라 땅에 불국정토가 건설됐고 산수가 수려하고 기가 왕성한 곳곳에 사찰이 세워졌다. 보덕암도 나산리의 깊은 골짜기, 험준한 산 중턱에 세워졌으나 어느 곳보다 명당에 속한다. 거기에 나라의 운명이 백천간두에 이르렀을 때 임금이 몸을 피할 수 있었으니 그보다 더 귀한 자리가 없었을 듯하다. 국구암에서 보덕암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도 현판 중수기에 ‘한 암자가 있어 새가 두 날개를 쭉 펴서 암석 위에 앉음이 보덕(普德)이요, 그 이름을 취하는 것이 불문에서의 보시공덕’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나산리 주민들은 아직도 어릴 적부터 입에 붙었던 국구암이라는 이름에 익숙하다.보덕암과 그 절에 이르는 길의 자연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법당이 앉은 암반 밑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졌고 법당에서 앞마당에 이르는 활등같이 굽은 산중턱의 등선도 볼만하다. 거기에 암자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수목들은 봄이면 붉고 흰 꼿들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다.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고 겨울에는 흰 눈이 덮인 나뭇가지들로 설경의 극치를 이룬다. 철마다 바뀌어 날아드는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절경의 품격을 높여주고 불국정토의 세계로 정점을 찍는다. 나산리의 주민들은 보덕암에 대한 기억으로 석가탄신일에 미어터지는 불자들의 행렬을 가장 뚜렷하게 꼽는다. 양남면은 물론 문무대왕면과 경주, 울산, 부산 등 인근에서 몰려오는 신도들이 보덕암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석가탄신일뿐만 아니라 정초는 물론 추석·칠석·단오·동지·성도일 같은 날에도 신도들이 불공을 위해 모여들어 보덕암으로 향하는 길 보덕암이 앉은 터는 풍수학자들이 명당이라고 손꼽는다. 구불구불하던 산길에 절 아 아래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개통돼 심산유곡의 보덕암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내려 약 200m 정도에 이르는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가파른 계단을 따라 경내에 오르면 선경에 접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보덕암으로 가려면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나산리 골짜기로 약 5㎞ 정도 자동차로 가면 된다. 시간으로는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나산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상라리 쪽으로 좀 더 가면 도로변 좌측에 ‘보덕암’이라는 안내판이 등장하고 그 방향으로 골짜기로 2km 들어가면 속세를 떠나 자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늑한 보덕암에 이른다.   ※ 이 콘텐츠는 (주)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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