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오래 입어 헤진 스웨터를 걸치고 팔순이 넘은 어머니가6시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어머니는 늘 시간을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이제 어머니는 시간의 먹잇감이 되었다시간은 이미 귀를 먹어치웠다삐걱거리는 나무의자에 앉은왼쪽 발목 관절을 먹는 시간의 입가에어머니가 먹은 시간이 질질 흘려 내렸다시간은 사람을 먹어 작아지게 한다기억을 먹어 버리고안경 너머 짓무른 눈에는 끈끈한 침을 발라 놓았다이 빠져 흉한 사기그릇처럼군데군데 이빨마저 먹어 치웠다시간 앞에 먹이거리로 던져진 육신어머니는 이제 손목시계를 차지 않았다오늘도 어머니는 6시 13분에 저녁을 달게 먹었다기다렸다는 듯 시간은 어머니 오른쪽 무릎 관절에 입을 대었다먹히던 시간이무서운 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정진혁,`시간이 사람을 먹고 자란다`     노화 앞에 인간의 운명은 비참하고 끔직하다.시간 속에서 결국 인간은 노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차츰 죽어 간다.  말랑말랑하던 피부가 수분이 빠지고 근육 탄력이 죽어 가면서 쭈글쭈글한 주름이 온 몸을 점령한다.  이 시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에 관한 탄식과 연민에 관한, 시간이 키워드인 시다.  "어머니는 늘 시간을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이제 어머니는 시간의 먹잇감이 되었다"시간은 어머니의 귀를, 이빨을, 발목 관절도 먹어 치우는" 잔인한 입"을 우리는 본다.  인생은 시간으로 구축되어있고, 두말 할 것 없이 인생은 시간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시간은 사람을 먹어 작게 만들고", "시간 앞에 먹이거리로 던져 지는 육신"을 보며 화자는 할 말을 잊는다.  올해의 마지막 12월, 달력 앞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시간의 무서움과 잔인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혹시 나는,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낭비한 죄`는 없는가? 냉정하게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져 봐야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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