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하는 동경주 구석구석 오늘은 양남면 율포에 찾아갑니다. 양남면 하서4리는 진리마을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이 마을로 통하는 길이 없고 하서에서 나룻배를 이용해 건넜다고 해서 나루 ‘진(津)’과 마을 ‘리(里)’를 합쳐 ‘진리’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신라시대에는 이 마을을 밤나무가 많이 있는 포구라고 해서 ‘율포(栗浦)’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밤나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율포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율포는 현재 평범한 어촌마을입니다. 다른 포구에 비해 규모가 작아 눈여겨보지 않으면 이 마을이 가지는 역사적 무게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양남면 주상절리가 시작되는 남쪽 끝마을이어서 관광객들이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해 율포를 찾아들지만 이 마을이 신라의 왕과 충신에 얽힌 설화를 품은 유서 깊은 마을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이들은 드뭅니다.신라 17대 내물왕부터 18대 눌지왕까지 신라 최고의 충신으로 불리는 박제상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내물왕 당시 신라는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왕의 둘째 아들인 복호(卜好)를 고구려에, 셋째 아들인 미사흔을 왜국에 파견해 군사 원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와 왜국은 왕자를 인질로 삼고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내물왕의 큰아들인 눌지왕이 왕좌에 즉위한 뒤 두 동생을 고구려와 왜로부터 구출해 오기 위해 신하들과 의논했습니다. 그때 모든 신하들은 박제상이 그 중책을 맡을 적임자라고 천거했습니다. 박제상은 군말 없이 고구려로 달려갔습니다. 장수왕을 만난 박제상은 진정성 있는 언변으로 설득해 복호를 구출해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눌지왕은 복호의 귀환에 만족하지 않고 왜국에 붙잡힌 아우 미사흔이 보고싶다고 울음 섞인 하소연을 늘여놓았습니다. 박제상은 고구려에서 돌아와 집으로 달려가는 대신 선걸음에 곧바로 왜국으로 떠났습니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향하기 위해 배를 띄웠던 항구가 바로 율포입니다.박제상의 부인은 고구려에서 복호를 구출한 남편이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왜국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향한 율포를 향해 내달랐습니다. 그러나 아녀자의 걸음걸이가 그리 시원하지 않았고 마음만 급해 내닫다가 지금의 배반동 망덕사지가 있는 모래 벌판의 남쪽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박제상의 아내는 그곳에서 길게 뻗치고 드러누워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곳이 바로 ‘장사(長沙) 벌지지(伐知旨)’입니다. 긴 모래사장에 다리를 뻗치고 앉아 일어나지 않고 통곡을 하는 부인을 친척들이 달랬지만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박제상은 왜국에 닿아 마치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해 온 것처럼 속였습니다. 박제상은 꾀를 내 미사흔을 탈출시켰고 자신은 붙잡혀 왜국의 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왜국의 왕은 충의로 가득한 그를 설득해 자신의 신하로 삼으려 했지만 박제상은 그 유명한 명언을 남깁니다. 바로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결코 왜의 신하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박제상은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마침내 불에 태워지는 참형을 받아 죽었습니다.그의 아내는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난 바다가 잘 바라다보이는 치술령 산마루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간절히 기도를 하며 기다리던 아내는 결국 그 자리에서 거다란 바위가 됐다고 전합니다. 그 바위가 바로 망부석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혼은 한 마리 새가 돼 울산 울주군의 국수봉으로 날아가 바위로 스며들었다고 하는데 그 바위를 품은 사찰이 울주군 범서면의 은을암입니다.경주의 박제상 유적은 율포와 벌지지뿐입니다. 망부석이 있는 치술령은 외동읍과 울산의 경계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울산의 유적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울산이 잽싸게 망부석과 은을암을 엮어 박제상을 마치 울산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기도록 포장했습니다. 울주군 두동면에는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모시는 사당과 전시관을 만들어 제대로 된 유적지를 만들어 뒀습니다. 경주는 신라의 대표적인 충신을 기리는 유적을 하나도 만들어두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율포는 박제상의 충혼이 담긴 포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고구려에서 왕의 아우를 구해내고 곧바로 왜국으로 떠난 그의 충의가 가득 담긴 결정적인 단서가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율포는 역사와 문화적 흔적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율포로 가기 위해서는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남쪽으로 약 3㎞, 10분이 소요됩니다. 작고 소담한 포구마을인 율포에서는 박제상의 충의를 흠뻑 느끼고 대한민국 최고의 자연유산인 주상절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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