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하는 동경주 구석구석 오늘은 문무대왕면 장항리사지에 찾아갑니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에서 석굴암으로 향하는 깊은 계곡은 경주에서 몇 남지 않은 원시자연을 품은 절경입니다. 계곡을 따라 석굴암으로 향하다가 오른쪽 토함산 기슭에 통일신라 시대의 강건한 석탑이 하나 눈에 띕니다. 석굴암으로 난 길과 그곳 석탑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고 토함산 자락이 계곡을 향해 힘차게 내려오다가 편편한 평지를 이루고 그 위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입니다.이 석탑을 품고 있는 장항리사지는 토함산 기슭 해발 197m의 장항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입니다. 장항리사지는 석탑도 있고 금당터도 발견됐으며 금당터에 부처님이 앉았던 좌대도 있으니 분명히 절터이기는 하지만 그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따서 그냥 장항리사지라고 부릅니다.길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 장항리사지에 오르면 길 위에서 보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절터도 높고 석탑도 장중합니다. 원형이 잘 보존된 5층 석탑과 파괴된 탑의 흔적, 그리고 돌로 만든 부처님 좌대가 보입니다. 오층석탑은 서탑이라고 부르고 파괴된 탑은 동탑이라고 부르며 좌대는 석조불대좌라고 명명합니다. 그리고 석조불대좌를 둘러싼 금당터의 흔적이 뚜렷합니다.서탑인 5층 석탑은 금당터에서 서남 방향으로 약 15m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탑은 계곡에 무너진 상태로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해 금당터와 서탑 사이에 부재를 모아 쌓아두고 있습니다. 서탑은 1925년 일제강점기 때 도굴범이 탑 속에 있는 사리장치를 빼내기 위해 폭파해 파괴됐던 것을 1932년 복원하고 보수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탑은 이중의 기단 위에 통일신라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으며 높이가 약 9m에 이릅니다. 토함산으로 가는 계곡길에서 바라다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계곡을 건너 절터에 들어서면 탑의 위용이 오롯하게 드러납니다. 현재 파괴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동탑도 부재로 미뤄 보면 서탑과 규모가 같은 5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서탑의 첫째 층은 중앙에 문 모양의 문비와 자물쇠, 사자머리 장식 문고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는 1구씩의 금강역사상 돋을새김돼 있습니다. 벗은 상체에 허리에서 무릎 아래를 덮는 치마 모양의 옷인 군의를 입은 금강역사상은 떡 벌어진 어깨와 버티고 서 있는 다리의 근육으로 당당한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부라린 눈과 두툼한 코, 앙다문 입, 툭 불거진 광대뼈 등은 금강역사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또 하나 주목할만한 것은 절터 금당자리에 놓인 석조불대좌입니다. 이 대좌 위에 석조여래입상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불상은 1932년 서탑을 복원할 당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불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됐던 것을 복원했으며 광배(光背) 일부와 무릎 이하는 사라지고 없습니다.석조불대좌는 윗돌과 아랫돌로 나뉘어 있다. 아랫돌은 팔각으로 각 면마다 각기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네 곳에는 동물을, 다른 네 곳에는 신장상을 새겨놨습니다. 그리고 윗돌에는 연꽃을 16송이씩 조각했습니다. 대좌 윗부분에 불상을 세워두기 위한 촉구멍이 있어 불상이 입상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아랫돌에 새겨진 사자상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잘 보존돼 있습니다. 이 사자상은 서탑의 인왕상과 함께 장항리 사지의 대표적 부조상으로 손꼽힙니다.장항리사지는 문무대왕면에서 석굴암과 불국사로 가는 길에 위치해 있지만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입니다.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는 약 20㎞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차량으로 약 30분이 걸립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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