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대구·경북지역에서만 평생 활동하고, 지역 문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전상렬(1923~2000) 시인의 탄신 100주년을 맞은 해다. 문인들이나 문학단체가 주선하는 추모 행사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으나 유족들의 정성과 필자의 도움으로 100편의 시를 선정해 담은 시선집 `바람 따라 세월 따라`(문학세계사)가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강 따라 물이 흐르고/물 따라 강이 흐른다/물 흐르듯 흐르는 세월 기슭에/저만치 고목이 서 있고/바람 따라 세월이 가고/세월 따라 바람이 흐른다/넘어 치는 강바람에/잎은 물나부리로 출렁거렸고/세월에 발돋움했지마는/애 말라 속이 썩은 둥치/원으로 겹겹 파문져 가는 나이에/안으로 겹겹 인고가 그대로 긴 사연이고/하늘은 온갖 모양으로 바뀌어도/바다로 가는 마음 그대로 그것 아닌가/안개와 구름과 하늘빛 물색/강물은 저렇게 흐르는 것이고/고목은 저만치 서서만 있고/바람 따라 세월이 가고/세월 따라 바람이 흐른다.(시 `고목과 강물` 전문)  1965년에 발간된 시집 `생성의 의미`에 실려있으며, 대구 월광수변공원에 건립(2004)된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다. 향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자연과의 친화나 회귀, 그 속에서의 소요를 통해 일관되게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추구했으며, 동양적인 정신의 깊이와 불교적 세계관을 포용하면서도 진솔한 언어로 겸허하게 자신만의 서정 세계를 심화하고 확대했던 시인이다.  1950, 60년대의 시에는 압축과 절제, 이미지와 리듬이 중시되고, 자연에 투사한 내면세계를 떠올리는 관념적 존재 탐구에 무게가 실렸으며, 1970, 80년대에는 그 연장선상에서 세월에 대해 더욱 본격적으로 천착하는 한편 역사의식이 두드러지게 투영되는 변모를 보이기도 했다. 담백한 언어로 원숙한 경지를 펼쳐 보인 1990년대에는 인생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으로 회귀하는 정서와 지난 세월을 아름답게 반추하는 향수를 근간으로 관조와 달관의 세계를 떠올려 보였다.  이 시기에는 노경의 적막하고 고독한 심경을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그려 보이면서도 유유자적하는 여유와 제행무상의 질서에 순응하는 관용의 미덕이 두드러졌다. 이번 시선집의 해설을 쓰면서 새삼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만년에 이르도록 지칠 줄 모르는 시적 열정을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으로 감싸 안으며, 허명과는 담을 쌓은 채 오직 자신의 서정 세계를 처연하게 심화하고 확대하는 길을 걸었다.  내 생일에서 이만큼 흘러온/세월의 강변에 흩어진 추억은/저녁노을에 곱게 물들고/여기가 어디쯤인지/어렴풋이 짐작이 가지만/포구에서 갈아탈 배가/어디로 가는지/아직도 나는 그걸 모른다.(시 `아직도 나는` 부분)  그가 마지막으로 발간한 열세 번째 시집 `아직도 나는`에 실려있는 이 시는 죽음에 대한 예감까지도 달관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시를 추구하고 그 안에서 삶을 겸허하게 가꾸고 다지는 게 그의 문학적 생애였던 것 같다. 전상렬 시인은 1950년 첫 시집 `피리소리`를 출간하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입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 이듬해 두 번째 시집 `백의제`를 냈으며, 2000년 작고할 때까지 `하오 한 시`(1959), `생성 의미`(1965), `신록서정`(1969), `불로동`(1971), `낙동강`(1971), `생선가게`(1977), `수묵화 연습`(1982), `세월의 징검다리`(1986), `시절단장`(1990), `보이지 않는 힘`(1995), `아직도 나는`(1999) 등 열세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 외에도 산문집 `시의 생명`, `바람 부는 마을`, `동해 엽신 기타`와 `전상렬 문학선집`, `목인 전상렬 선생 고희기념문집`, 편저 `시인의 고향` 등을 냈으며, 1960년에는 경북문화상(대구시문화상 전신)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대구시지회장, 경산문학회장, 대구노인문학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중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할 때까지 평생 대구·경북지역에서만 교편생활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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